상장일 시초가 200% 상승…'스팩'으로 번진 공모주 도박
입력 2024.05.03 07:00
    올초 상장한 스팩들, 상장일 시초가 높게 형성
    합병상장 기대감보단 단기차익 실현 목적 풀이
    “스팩 주가 오르면 되레 합병상장 추진 어려워”
    추매 성향 짙은 개인들에 여전히 경고 목소리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과열된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가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상장 당일 시초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상 공모주 시장이 활황일 경우 스팩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편이다.일반 공모주 대비 공모 물량이 절대적으로 적은 데도 상장 당일 가격 제한폭이 400%까지 열려 있는 덕에 단기 트레이딩(단타) 수요가 몰린 영향으로 풀이되고 있다.

      다만 합병가액이 스팩의 공모가(2000원) 수준에서 결정되는 점, 3년 이내 합병상장에 실패할 경우 스팩 청산에 따라 손실 유무가 갈릴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투자자 주의 당부에도 투자 열기가 지속되는 데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한달간 증시에 입성한 스팩들은 기관투자자(이하 기관) 수요예측에서 1000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4월 초 수요예측에 나섰던 신한스팩13호는 1337.88대 1, 하나스팩33호는 1277.22대 1의 경쟁률을 시현했다. 일반 공모 청약도 치열했다. 각각 1724.63대 1, 2248.32대 1의 청약 경쟁률이 기록됐다.

      높은 경쟁률 만큼 상장 당일 시초가도 공모가의 2~3배 수준에서 형성됐다. 올해 첫 상장한 스팩인 대신밸런스스팩17호는 공모가보다 198.5% 높은 5970원으로 시초가가 형성됐다. 하나스팩31호와 하나스팩32호, 신한스팩12호, 신한스팩13호 모두 공모가 대비 시초가가 모두 2배 이상 높게 형성됐다.

      증권가는 스팩들의 상장 당일 시초가가 높게 형성되는 것에 대해 비이성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통상 기업공개(IPO) 시장이 활황일 수록 스팩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지는 편이어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스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상당한 데 차익 시현을 위한 단기투자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공모 물량이 적어서 주가 변동성이 높은 편인데, 지난해 가격 제한폭이 기존 공모가 대비 260%에서 400%로 늘어난 영향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기관들도 스팩의 경우 공모로 투자할 시 원금이 보장되는 부분이 있어서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꾸준히 투자해오긴 했다"라고 말했다.

      합병상장에 따른 주가 상승 기대감을 원인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까지 합병상장 완주 사례가 많지 않아서다. 지난해 NH스팩29호가 골프시뮬레이터 전문기업인 크리에이츠와 합병상장에 나서려 했으나, 기관 수요예측에서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며 무산됐고 스팩 해산 사유가 발생했다. 하나금융25호스팩도 2차전지 인공지능 비전 검사 전문기업인 피아이이와 합병을 통한 코스닥 상장 절차를 밟았지만 결국 상장 계획은 철회됐다.

      스팩의 주가 변동폭이 클수록 합병상장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스팩의 주당 가치는 합병계약일로부터 최근 1개월, 1주일, 최근일 주가를 평균낸 값을 기준으로 30% 범위 내에서 할인 또는 할증하여 결정한다. 스팩의 주가가 공모가 기준 30% 이상 상승했을 경우, 발행사들은 지분희석을 우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가 공모가의 30% 이상으로 뛰면 가치평가하기가 애매해진다. 합병시키기 힘들어진다고 보는 부분이다”라며 “2000원 수준의 주가가 유지된 채로 합병을 진행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일반적이긴 하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스팩 공모 청약에 참여해 차익을 노리려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이어지는 데 우려 목소리가 많다. 특히 추격 매수 경향이 짙은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경고음이 울린다. 스팩은 상장 후 3년 이내 합병 대상 기업을 찾지 못하면 공모가 수준의 자금과 이자만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게 돼 있다. 합병상장을 하더라도 합병가액은 공모가 수준인 2000원 선에서 결정된다. 공모가 대비 높게 형성된 주가 수준에 매집할 경우 손실을 볼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도 나서 지난해 스팩 합병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의 스팩 취득단가가 개인의 절반 수준이고 합병성공 조건부 수수료도 수취하는 만큼 비상장 법인에 대한 엄정 평가보단 합병 성공을 우선할 유인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만 상장 후 시장의 거래가격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스팩의 경우 현금만으로 구성돼 기업의 가치가 투명하게 드러나는만큼, 상장 당일 시초가 규제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스팩의 경우 주가가 오를수록 오히려 합병에 어려움이 커지며, 이로 인해 주주들이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진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상장 당일 시초가가 2~3배 높게 형성됐던 스팩들의 주가는 공모가 수준으로 한두달 사이 급격하게 떨어진 모습이다. 올해 1분기 상장한 스팩들의 주가는 대부분 2000원대 초반에서 형성되고 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스팩 주가가 첫날 급등하니 많이들 투자하지만 한 두개 정도 주가가 빠지는 종목이 나오면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고 본다"며 "가성비 측면에서, 공모가가 높은 물량을 받아 차익을 노리는 것이 낫다. 스팩보단 공모가가 높은 일반 공모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전략을 가져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