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유동성 긁어모은 에코프로그룹…장밋빛 전망은 1년도 못갔다
입력 2024.05.10 07:00
    취재노트
    과열 논란에도 CB 발행·자회사 IPO로 유동성 흡수
    1년 안 돼 사라진 기대감…상반기 적자 지속 전망
    시장에서건 현업에서건 경고음 계속 새나왔는데
    의도 떠나 회사선 몰랐을까…과열 최대 수혜자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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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년 전 에코프로그룹 주가는 국내 증시 투자자의 부러움과 초조함을 한눈에 드러내는 지표였다. 시장에 경고음이 없지 않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에코프로그룹주를 담았다. 매해 2배씩 성장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종국엔 기관도 두 손 들고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전문 투자가들도 에코프로그룹주 보유 여부로 성적표가 갈렸었다. 현업에 종사하는 실무진이나 투자가 사이에서 답답함 반, 걱정 반으로 쏟아내는 푸념이 일상이었을 정도다. 

      과열이냐 아니냐, 시장이 두 패로 나뉘는 동안 에코프로그룹은 손쉽게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일 수 있었다. 시중금리 절반도 안 되는 이자로 전환사채(CB)를 발행했고, 지주사 할인 우려에도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마무리 지었다. 조달 문제로 골치 썩는 기업들 입장에서 보자면 쉬운 돈들이다. 미국 보조금·시장 수급·포모(FOMO)에 막판엔 갑작스러운 정부 공매도 금지 조치까지 운도 많이 따랐다. 

      장밋빛 전망은 1년도 못 가 사라졌다. 

      1분기 에코프로비엠은 6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재고손실 충당금 환입분을 빼고 보면 사실상 지난 분기에 이어 적자 지속이다. 시장에선 2분기에도 에코프로비엠이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사업은 에코프로비엠을 중심으로 밸류체인이 연동돼 있다. 에코프로는 지주사에 불과하니 상반기 그룹 실적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자연히 주가는 내리막을 탈 수밖에 없다. 1년 전 각각 40조원 위로 치솟았던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시가총액은 8일 각각 13조원, 21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실제 이익 체력을 감안하면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연초 수급 논리로 장중 한때 24만4000원을 찍었던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10만원 선에 거래 중이다. 

      "분기 1000억원을 버는 2차전지 소재사 에코프로비엠과 이를 지배하는 에코프로의 시총이 각각 40조원, 50조원이다. 그런데 글로벌 3위 전기차 업체인 현대차 시총이 40조원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소재사는 매년 2~3배씩 실적이 성장하기 때문에 밸류에이션 갭을 금방 해소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투자하지 않았다" 

      당시 한 2차전지 소재사의 메자닌 투자 제안을 물리친 투자가가 전해준 일화다. 현대차는 당시에도 분기 3조~4조원의 영업이익을 남겼고, 올 들어서도 그만큼 꼬박꼬박 벌고 있다. 반면 에코프로그룹과 같은 소재사는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판매 성적, 원료 가격, 각국 전기차 지원책 등 외부 변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하반기 이후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실적 전망치 외에도 경고음은 가득했다. 

      2차전지 업계 내 실무진 사이에서도 전방 전기차 고객사의 부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순수 전기차로 마진을 남기는 고객사는 미국 테슬라 정도뿐이다. 이들과 직접 거래를 튼 2차전지 셀 업체가 합작법인(JV) 계약 연기, 취소나 고객사와 미국 보조금 재분배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한 것도 작년 상반기부터다. 

      밸류체인 뒷단에 있다는 이유로 2차전지 소재사가 이 같은 전방 사정을 몰랐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전기차와 셀 업체 간 JV 계약이 틀어지면 양·음극재를 포함한 소재사 전반 계약 물량도 변동이 불가피하다. 전기차 업체끼리 차 가격을 깎으며 출혈 경쟁을 하면 후방 셀, 소재사가 7~9% 수익성을 고수할 수 있다는 가정 역시 위험해진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접한 이런 정보를 상장사들이 몰랐다고 보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주가가 실제 이익 체력을 한참 벗어난 상황에서 투자금을 유치하게 되면 결국 시장에서 누군가가 폭탄을 받아줘야 한다"라며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에코프로그룹주 주가 과열을 걱정할 정도였으니, 어떻게 보면 미필적 고의를 의심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에코프로그룹이 이 같은 상황을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개인이나 기관투자가나 1차적인 투자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그러나 주가가 치솟을 때 CB를 찍고, 자회사 IPO를 거듭한 데 따른 사후 평가에선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실적을 작년 장밋빛 전망과 비교해 보면 당시 그룹 주가에 거품이 껴 있었다는 게 잘 드러난다. 잘못 판단한 사람들 책임만 따지기엔 에코프로그룹이 누린 수혜가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