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 3개 동시 작성"…출자 공고 몰리자 VC 펀딩 전쟁
포스코기술투자·JB인베 등 잇단 후속 펀드 결성…'속도전'
규제 리스크에 움츠러든 PE·정책 훈풍에 공세적 운용 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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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의 모험자본 공급 기조가 강화되면서 벤처캐피털(VC) 시장이 다시 '펀딩의 봄'을 맞고 있다. 정책금융기관과 연기금·공제회 자금이 한꺼번에 쏟아지자, 이미 펀드를 마감한 하우스들까지 서둘러 후속 조성에 나서고 있다. 회수(엑시트)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일단 펀딩이 우선이란 판단에서다.
정부는 현재 '생산적 금융' 기조 아래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전방위로 밀어붙이고 있다. 모태펀드의 매칭 출자 규모가 예년 수준을 크게 웃도는 데다,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정책은행들도 벤처·스타트업 영역 출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모험자본에 대한 위험가중치 완화가 본격화하는 내년에는 출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올해 기관투자자들의 VC 출자 규모 증가폭은 뚜렷하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하반기 블라인드펀드 출자사업을 통해 1400억 원을 배정했다. 지난해 1050억 원 대비 약 350억 원 증가한 수치다. 노란우산공제회 역시 벤처펀드 출자액을 1800억 원으로 확대하며 전년 대비 700억 원 늘렸다. 군인공제회도 VC 부문에 14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하면서 약 200억 원 늘렸다.
정책은행들 역시 마찬가지 기조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중소·중견기업 해외진출펀드에 20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는데, 이는 지난 2023년 500억원 대비 4배 가까이 늘어난 구모다. 산업은행도 '지역성장지원펀드와 'AI 코리아 펀드' 등 정책형 펀드에서 벤처·VC 부문 출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출자 공고가 쏟아지면서, VC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한 VC 심사역은 "제안서 3개를 동시에 쓰고 있다"라며 "이렇게 출자 공고가 겹친 건 처음이다. 엑시트에 대한 걱정 있긴 하지만 5년 뒤 일이니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펀드부터 만들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에 상반기 이미 펀드 조성을 마친 하우스들도 추가 펀드 조성에 나서는 모양새다. 자금이 풀릴 때, 미리 펀드를 만들어 놓자는 복안이다. 실제로 포스코기술투자는 상반기 500억 원 규모의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1호 펀드를 결성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250억 원 규모의 추가 펀드 조성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JB인베스트먼트 역시 상반기에 400억 원 규모 펀드를 결성한 데 이어, 하반기 340억 원 규모의 신규 펀드를 추가로 조성하고 있다. JB인베의 연간 펀딩 규모는 1500억 원에 육박해 전년(427억 원)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이 밖에도 복수의 하우스들이 추가 펀드 조성에 나섰거나 검토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호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책 기조상, 기관투자자들이 한동안은 VC에 자금을 집중해야 할 공산이 크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내년에는 정부 분위기상 VC 쪽에 힘을 더 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투자심리도 빠르게 회복 중이다. 지난해까지 회수 통로가 막힌 점이 가장 큰 부담으로 꼽혔지만, 주식시장 반등세가 이어지면서 회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상장사 중심의 IPO 시장 부진이 남아 있지만, 비상장 M&A나 세컨더리 시장이 열리며 숨통이 트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PEF(사모펀드)와의 온도차도 두드러진다. 국정감사와 당국 차원의 LBO(차입매수) 리스크 점검이 이어지면서 PEF 전반에 보수적인 기류가 흐르는 반면, VC는 정책‧수급 훈풍을 타고 공세적 운용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IMM이나 스톤브릿지 등 PE‧VC를 함께 보유한 복합 하우스의 경우 VC 부문이 상대적으로 활력을 보이며 희비가 엇갈린다는 분석이다.
다만 시장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부담도 커지고 있다. 출자 유입이 많아졌다고 해서 성과가 자동 확보되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자금이 풀리면 투자활동이 활발해지지만, 결국에는 운용의 내실과 회수 전략이 관건이다.
한 VC 운용사 관계자는 "펀드 결성만큼 중요한 건 이후 포트폴리오의 성장성과 엑싯 전략"이라며 "지금은 자금이 몰리는 국면이지만, 진짜 경쟁은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