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네트워크 확보한 SI 없인 엑시트 어려워
유암코, 매각 불발 가능성에 지분 축소 검토
보증·증자 부담은 2조원대…장기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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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호황에도 불구하고 케이조선 매각이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조선 빅3(한화오션·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가 모두 빠진 가운데, 거래 성사의 전제로 거론돼 온 전략적투자자(SI)를 붙이지 못하면서 딜 구조 자체의 한계가 부각되는 국면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매각을 단순한 흥행 부진이 아니라 "누가 들어와도 책임을 나누기 어려운 거래"로 바라보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초기 검토 단계부터 케이조선 인수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HD현대그룹 역시 복수의 재무적투자자(FI)들에게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그룹은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선박 조선사 인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나, 케이조선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결과적으로 조선업을 대표하는 대형 전략적 투자자들은 이번 인수전에서 모두 이탈한 셈이다.
국내 대형 SI가 빠지면서 거래의 무게중심은 자연스럽게 FI 중심 컨소시엄, 혹은 해외 SI와의 결합 가능성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조선업 특성상 단순 재무적 투자만으로는 인수 이후 경영·수주·보증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렵고, 해외 SI 역시 기술 협력이나 사업 제휴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케이조선 인수 이후 원매자가 부담해야 할 조건은 가볍지 않다. 매각가로 거론되는 지분 가치 외에도 대규모 증자, 선수금환급보증(RG), 자산유동화(ABL) 대출과 관련한 연대보증 부담이 뒤따른다.
매도자인 유암코(연합자산관리) 측이 희망하는 지분 가치만 5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되지만, 증자와 보증 부담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인 거래 규모는 2조원 내외로 추산된다. 시장에서 2등급 조선사로 분류되는 케이조선의 체급을 고려하면 인수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매도자 측은 매각 지분을 기존 100%에서 50%로 축소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서는 이를 거래 구조 혁신이라기보다, 100% 매각이 가격과 책임 부담 문제로 성사되지 않자 선택지를 낮춘 현실적 대응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다만 지분율을 낮추더라도 인수 이후 요구되는 증자와 연대보증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이에 인수 후보 사이에서는 "책임은 경영권 인수급인데, 가져갈 수 있는 권한과 출구는 소수지분 투자급"이라는 구조적 괴리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주주가 잔존하는 구조에서는 FI의 출구 전략 역시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태광그룹 역시 컨소시엄 구성을 전제로 케이조선 인수 가능성을 검토해 왔지만, 거래 구조상 요구되는 역할을 분담할 동행 파트너를 확정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태광은 국내외 사모펀드들을 접촉했으나 글로벌 사모펀드 TPG를 비롯한 다수 투자자들로부터 불참 의사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태광이 단독으로 거래를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마땅한 파트너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FI 입장에서 태광은 미국 네트워크나 기술 측면에서 SI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국내 사모펀드 파빌리온프라이빗에쿼티(파빌리온PE)는 미국 테크 기업을 SI로 확보한 상태에서 케이조선 인수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미국 SI를 붙이는 시나리오 자체가 거래 성사의 충분조건이 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미국 테크 기업들 입장에서는 케이조선 지분 인수나 경영 참여 없이도 기술 협력이나 사업 제휴만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인수 이후 요구되는 대규모 보증과 재무적 책임을 함께 부담할 유인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조선업 슈퍼사이클과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원매자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케이조선은 최근 실적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단기 실적보다 인수 이후 장기간 이어질 책임 부담과 출구 불확실성이 더 크게 평가되는 국면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매각을 특정 원매자의 이탈 여부로 설명하기보다는, "누가 들어와도 짝을 찾기 어려운 거래"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유암코가 선택할 수 있는 다음 시나리오 역시 제한적이다. 100% 매각을 고수할 경우 거래 지연이 불가피하고, 지분율을 낮춘 구조 역시 원매자 부담을 근본적으로 덜어주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가격이나 보증 조건 등 실질적인 거래 조건을 손대지 않는 한, 현재의 원매자 구도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거래 일정 역시 원매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케이조선 본입찰은 당초 1월로 예정됐으나 한 차례 연기돼 2월로 넘어간 상태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원매자들은 2월 말까지 주관사에 본입찰서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외 SI·FI 모두 컨소시엄 구성을 확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