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新투자회수 기법, ‘리캡’의 두 얼굴
입력 15.11.19 08:18|수정 15.11.19 09:16
올해 리캡 7건…지난해 두 배 껑충
운용사가 돈 빌려 투자자에 배당
저금리·투자 수요 증가 등 영향
‘투자→리캡’ 기간 짧아 부담 여전
  •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파트너스는 먼저 투자한 ING생명의 인수구조를 재조정해 사모펀드(PEF) 투자자들에게 4000억원가량을 돌려주는 방안을 추진했다. ING생명에서 배당을 받아 펀드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게 아니라, MBK파트너스의 펀드가 세운 인수목적회사(SPC)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형태다.

    우리나라에 PEF가 도입된 이후 이 같은 투자회수 사례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지만 지난해부터 본격화됐고 이제는 PEF의 투자회수 방편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자본구조재조정(Leveraged Recapitalization, 이하 리캡)을 통해 지난 2년간 PEF가 투자자에게 배당한 금액(투자회수금액)은 1조2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M&A 인수금융 거래의 10%에 해당한다.

  • ◇1년 전 리캡 ‘논란’… 올해는 주선 경쟁

    불과 1년 전만 해도 시중은행은 리캡에 대해 “선순위 대출을 늘리고 후순위인 지분을 줄이면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부담해야 할 위험이 커진다”며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PEF가 기업을 인수한 지 1~2년만에 빚을 내 펀드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컸다. 지난해 MBK파트너스의 코웨이뿐만 아니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투자한 로엔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리캡 당시 이러한 비판이 거셌다.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M&A 인수금융 주선 경쟁이 가열되면서 리캡에 대한 논란은 서서히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리캡에 참여하겠다는 투자 수요도 넘쳤다. 보험사와 공제회 등이 고금리 투자처를 찾아 인수금융 투자에 줄줄이 뛰어들었고, 은행들과 증권사 등은 인수금융에 집중 투자하는 사모부채펀드(PDF)를 결성해 투자 경쟁을 벌였다.

  • 잇따른 리캡 추진 속에 시장의 원칙도 어느 정도 정해졌다. 기업 인수를 위해 세운 인수목적회사로 유입될 수 있는 최대 현금흐름의 4~5배 수준까지는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때 현금흐름은 투자회사의 상각전이익(EBITDA)에 PEF가 보유한 투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감안한 값이다.

    ◇PEF 투자회수 통로로 자리매김

    리캡이 증가하면서 PEF는 새로운 투자회수 통로를 갖게 됐다. PEF들은 그간 대규모 기업인수를 성사시켰지만 투자회수는 지지부진했다. 지난해와 올해 매각이 완료된 투자 건은 테크팩솔루션(MBK)과 메가박스(맥쿼리), 동양생명(보고펀드), 에버다임(신한PE) 정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PEF들이 투자기업을 매각해 투자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시점이 됐지만, 실제 매각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며 “인수 후 매각 전략보다는 인수, 리캡, 매각으로 투자 회수 시점을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칼라일그룹은 약진통상과 ADT캡스,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경남에너지, 베어링PEA는 교보생명보험 지분 투자와 관련해 리캡을 진행했다. 총 규모는 7200억원이다.

    PEF 투자자들도 이제는 리캡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투자 후 매각을 통한 회수보다는 1~2년마다 배당 형태로 조금씩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투자성과 지표인 내부수익률(IRR)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PEF의 고위관계자는 “특히 국내 연기금·공제회 등이 투자자로 참여한 경우 리캡을 통한 배당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 ◇메자닌(Mezzanine)조달, 리캡 예고편

    인수금융에 대한 은행들의 보수적 접근도 리캡 거래를 활성화시킨 배경으로 꼽힌다. 원리금 상환 가능성을 우선시하는 은행들은 인수금융 대출에 있어 후순위(지분투자) 비율을 높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PEF가 제시하는 기업가치성장성은 다음이다. 그러다 보면 선순위와 후순위 사이에 공백이 발생한다. 전체 필요한 자금이 100인데 선순위 40, 후순위 40만 확보되는 식이다. 부족분을 메워준 건 증권사 들이었다.

    지난해부터 PEF들의 기업인수에 메자닌(Mezzanine)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메자닌은 제한된 규모의 선순위 인수금융과 역시 제한된 규모의 후순위를 보완·완충하는 장치다. 메자닌은 부채에 가깝지만 자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수 초기 적정 LTV(Loan to Value) 비율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투자회사의 실적이 ‘J커브’를 그려 기업가치가 떨어질 때 LTV 비율 상승을 방어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메자닌은 금리가 연 7~9%에 달한다. PEF들은 투자회사 실적이 안정궤도에 오르면 고금리 메자닌을 리파이낸싱하고 비슷한 규모로 차입해 후순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한 인수금융 시장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제안하는 메자닌은 보통 1년 후에 리파이낸싱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증권사는 이 과정에서 두 번의 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칼라일의 ADT캡스 리캡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칼라일은 인수대금 2조650억원 중 9850억원만 선순위 대출로 마련했고 3100억원은 메자닌 투자로 채웠다. 올해 선순위 대출과 메자닌은 리파이낸싱했다. 6%중반의 고금리 메자닌 자금은 4% 중반의 차입금으로 바꿨고 1500억원의 배당금도 손에 쥐었다.

  • 리캡의 증가에는 은행과 증권사의 경쟁격화도 한몫하고 있다. 은행이 터줏대감인 시장에 증권사도 숟가락을 올렸다. 증권사들은 공격적인 거래 수임에 나서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인 하나금융투자와 NH투자증권이다. 그런 가운데 M&A 시장에서 PEF들이 참여할 수 있는 투자 건이 줄고 있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통한 리캡에 거부감을 느끼던 은행들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수금융 조달시점에는 거래 종결이 중요해 펀드들이 불리한 조건으로 돈을 빌리지만 PEF가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가치가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면 금융회사간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경쟁이 붙어 금융회사와 PEF의 관계가 역전된다”고 말했다.

    ◇투자부터 리캡까지 1년, 우려 여전

    리캡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PEF 투자와 리캡까지의 거리는 1년 안팎으로 짧다는 평가가 많다. MBK의 코웨이가 그랬고 칼라일의 약진통상과 ADT캡스, 어피니티의 로엔엔터도 인수 후 1년 만에 나왔다. 인수한 지 1년 만에 상승한 기업가치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단기간에 가치가 오른 것이 PEF 운용사의 역량에 기인했다고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찍힌다. 주가와 상각전이익(EBITDA) 등 지표가 긍정적이라고 해도 ‘빛 좋은 개살구’일 우려가 있는 까닭이다. 매출은 늘지 않고 비용 절감만으로 이익을 냈다거나 소위 ‘밀어내기’식으로 나온 실적인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1~2년 사이에 리캡이 나오는데 시기가 짧아진 건 맞다”면서 “이 기간에 가치가 많이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고 했다.

    다만, 리캡 거래는 올해가 정점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이미 리캡 금리가 4%중반으로 한계치까지 달했고 시장금리도 상승할 것이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캡을 할 만한 신규 인수금융 거래도 적은 데다 국내외 경기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투자회사의 실적도 기대치에 못 미치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는 평가다.

    올해 PEF들의 투자 가운데 홈플러스와 한온시스템(구 한라비스테온공조) 정도를 제외하면 규모의 투자를 찾기 어려운 점도 내년 리캡이 올해보다는 줄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