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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성공과 그 방식에 얽매여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면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사업구조 고도화를 한층 더 체계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경영혁신 활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20일, 구본준 부회장 글로벌 CEO 전략회의)
지난해 12월 LG그룹은 신사업을 총괄해온 구본준 ㈜LG 부회장에게 기존 사업들의 경영 현황까지 전담시키는 인사안을 발표했다. 구본준 부회장은 구본무 ㈜LG 회장을 대신해 주요 계열사 CEO들과 2일간 '글로벌 CEO 전략회의'(GCC)를 이끌며 그룹 경영 전략을 총괄했다.
동시에 지난 가을 이후 비공개 경쟁입찰이 진행되어온 LG실트론의 매각 협상도 물밑에서 진행됐다. 유력 후보로 꼽혀온 중국 전략적 투자자(SI)가 사드배치 문제로 인한 중국의 자본통제로 주춤한 사이, 기존 인수 후보들도 인지하지 못한 SK㈜가 주체로 부상했다. ㈜LG 외 LG실트론 지분 49%를 보유한 재무적 투자자(FI)들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해가 바뀌어 LG실트론 ‘빅딜’이 공개되자 자본시장(IB)은 술렁이는 모습이다. 구본준 부회장의 전면 등장과 함께, 기업 인수는 물론 기존 사업 정리에도 소극적이었던 LG의 변화 '불씨'가 나타났다는 시각이다. ‘큰 장’에 목말라온 IB업계에선 LG발(發) 거래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LG실트론 매각'...LG그룹의 변화 분위기 신호탄?
LG그룹은 그간 인수·합병(M&A)보다 자체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하는 경영 전략을 고수해왔다. LG생활건강 등 일부 계열사가 중·소형 M&A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지만, 그룹 대표 사업인 전자·IT 사업에서는 주력 사업의 기술력 확보에 치중해왔다. 삼성전자가 최근 3년 사이 10여건의 굵직한 M&A에 참여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점과도 대비됐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 이후 비주력 계열사 구조조정, 하만 인수등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이전까지 M&A에 친화적인 그룹은 아니었다”라며 “자체 기술 투자를 통한 추격 기업(Fast-Follower)의 대표격인 삼성도 외부업체와의 ‘연결’로 체질 변화를 이뤘고, 자체기술 확보의 원조격인 일본 기업도 최근 파나소닉이 오스트리아 전장업체 ZKW를 인수하는 등 변화하다보니 LG도 위기감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화’(人和)의 그룹답게 비주력사업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장 관계자들은 LG전자의 고질적 문제로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고정비용 부담'을 지적해왔다. 삼성전자가 프린터사업부 등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LG이노텍도 한계 사업을 스핀오프(Spin-off) 형태로 분사시켜온 삼성전기와 대비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IT 업계 관계자는 “LG그룹에 골치를 썩여온 ‘LG실트론’이었다는 예외가 있겠지만, 2003년 LG카드 매각 이후 14년만에 그룹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했다는 점에서 향후 구조 개편에 ‘선례’로 작용할 수 있을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IB업계에서도 변화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당장 LG실트론의 매각 주체인 지주사 ㈜LG는 약 3000억원 규모 보유 현금과 이번 매각대금 유입을 통해 ‘실탄’ 측면에선 조단위 매물까지 소화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다. ㈜LG는 구체적 자금 활용 계획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선 벌써부터 LG그룹의 변화 방향에 대한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다.
한 대형 로펌 M&A 담당 변호사는 “LG그룹 거래는 한진그룹과 함께 '법무법인 광장'이 독점한다는 인식이 업계내에 강하지만, 광장과 혈연관계로 엮인 한진과 달리 LG그룹 거래 참여가 불가능할것 같진 않아 올해 더 적극적으로 접촉을 늘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에서 외면 받아온 지주사 ㈜LG에 대한 증권업계의 시각도 달라진 모습이다.
증권사 지주담당 연구원은 “이미 지배구조 개편을 마쳤고, 승계 문제와도 다소 떨어져 있어 윤리적으로 모범적 지배구조를 갖춘 범LG 그룹 지주사들은 역설적으로 같은 이유로 주식시장에서는 삼성, SK, CJ그룹에 비해 ‘재미없는 주식’으로 분류됐었다”며 “이 같은 저평가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지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삼성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 삼성전략혁신센터(SSIC)와 같은 지주사 주도의 투자전담 조직 신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주사가 보유한 현금을 바탕으로 신사업을 총괄하며 국내외 업체들의 M&A 및 지분 투자 등 경영 전반적인 밑그림을 전담하는 방식의 형태다.
◆'실트론'이기에 가능했을 뿐…"자금보다 폐쇄적 문화가 이유" 반론도
다만 계열사 매각이 LG그룹 기조 변화로 이어질지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매각 대상이 LG그룹의 주력사업들과 동떨어진 'LG실트론'이었다는 점, 여전히 공개된 전략 방향에서도 M&A보다는 'R&D'가 부각된 점 등이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한 그룹 내 관계자는 “이미 LG그룹도 LG전자를 중심으로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에 자체적인 M&A부서를 갖췄고 해당 조직을 통해 투자처를 발굴하는 외형은 갖춰놓았던 상황”이라며 “현업 문제에 대한 해결이 우선이었고, 자금 조달 문제도 겹쳐 활성화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R&D 인력이 주도권을 가진 조직일수록 M&A로 새로 유입되는 신규 인력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강할수밖에 없다”며 “삼성은 M&A로 체질변화에 앞서 삼성종합기술원 등 R&D 인력을 감축했지만, LG는 여전히 R&D 조직의 주도권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외부와의 협력에 대한 폐쇄적인 문화에 따른 영향이 더 컸지 자금문제는 LG그룹 M&A 결정에 부차적인 이유였다"고 덧붙였다.
그룹 내 M&A에 친숙한 경영진이 부재한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그룹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경험을 쌓은 데이비드 은 GIC 사장을 영입해 투자를 전담시키고, SK그룹이 지난해 말 이후 대형 로펌의 M&A 전담 변호사 등 IB인력들을 사내 M&A 전담 조직으로 지속적으로 영입하는 모습과도 대비돼고 있다.
한 증권사 LG그룹 담당 연구원은 “시장의 기대와 달리 LG그룹의 DNA에 비춰봤을 때 외부 반도체 업체와 손잡기보다 매각대금을 자체 계열사 실리콘웍스에 자동차 반도체 R&D 비용으로 투입할 것이란 농담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라며 “올해 초 한대근 실리콘웍스 창업자가 물러나고 LG그룹에서 손보익 전 LG전자 SIC 연구소장을 부임시킨 점도 향후 그룹 차원의 힘을 실어줄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LG카드·LG투자증권' 매각 이후 첫 계열사 매각
"사업재편 더 이상 늦추지 못할 것" vs "LG실트론이라는 예외 사례"
IB업계, LG발(發) M&A '큰 장' 기대감↑
"사업재편 더 이상 늦추지 못할 것" vs "LG실트론이라는 예외 사례"
IB업계, LG발(發) M&A '큰 장' 기대감↑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7년 01월 30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