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실적이 반갑지만은 않은 금융사 M&A
입력 17.03.03 07:00|수정 17.03.03 07:00
순이익 반영으로 자기자본 증가…PBR 활용시 매각가치도 커져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사 M&A…시장과 시각차만 커질 수 있어
  • 좋은 실적은 기업의 가치를 대변해주지만 금융회사 M&A에선 부담으로도 작용하는 모양새다. 순이익을 많이 낼수록 순자산 규모가 커지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주요 평가 척도인 금융회사의 가치도 높아지게 된다. 금융업종에 대한 인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기준이 높아지면 M&A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최근 현대저축은행 매각 작업을 재개했다. 지난해 일본 라쿠텐 등 굵직한 인수자가 있었음에도 매각이 무산됐기 때문에 올해는 더 신중하게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별다른 인수자 동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지난해 현대저축은행 매각 때 PBR 1배 수준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원매자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났다. 올해도 같은 수준을 기대한다면 매각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저축은행은 지난해도 350억원가량의 순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좋은 실적을 이어가며 순자산가치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통상 연간 실적이 잘 나오면 그를 반영하기 위해 매각을 늦추기도 하지만 현대저축은행의 경우엔 좋은 실적이 부담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인가 업종이 아닌데 덩치까지 커지면 인수자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대저축은행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순이익이 반영돼 자본규모도 커지게 되면 매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 8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산은캐피탈을 시장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매물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7000억원은 받아야 하지만 시장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면엔 산은캐피탈의 영업 호조에 따른 딜레마도 있다.

    산은캐피탈은 2014년 처음으로 순이익 1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는 약 96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BNK캐피탈의 한일월드 사태 후 캐피탈사의 조달과 영업이 위축됐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당기순이익 1000억원 시대의 지속’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본총계는 2014년 5751억원에서 지난해 9월말 6976억원으로 늘었다.

    산은캐피탈 매각은 장부가를 맞출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매년 늘어나는 자기자본은 산업은행이 매각가를 낮추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됐다. 매각을 하려면 자본 증가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렇다고 일부러 낮은 실적을 유도할 수도 없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할 때 이동걸 회장의 발언은 산은캐피탈 매각 철회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아주캐피탈은 지난해 아주그룹이 매각을 철회하기 했음에도 여전히 잠재 매물로 꼽힌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나 지난해 순이익 역시 영업환경 위축에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지킬 것으로 보고 있다.

    아주캐피탈은 상장사로 시가가 있지만 PBR 또한 중요한 기준이다. 금융사다 보니 아주그룹이 매각에 나설 때면 “PBR 몇 배수를 받아주겠다”는 식의 제안이 IB들로부터 몰리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그룹이 전의 PBR 기준에 집중하고 있다면 순이익 증가는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경쟁 심화로 캐피탈 업계 전망은 밝지 않지만 아주캐피탈의 실적이 급격하게 꺾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ING생명보험은 2013년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이래 적극적 영업전략이 실효를 거두며 매년 수천억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역시 순이익 규모가 전년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좋은 실적에도 지난해 ING생명 매각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기자본이 급격히 늘었고 MBK파트너스의 눈높이도 크게 높아졌다. 자기자본 증가의 상당 부분은 계정 재분류에 따른 것이었지만 순이익 증가의 효과도 있었다. 매각자 측은 JD캐피탈이 가격 기준을 충족했으나 중국의 사드 관련 보복으로 거래 성사가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JD캐피탈은 애초부터 금융당국 승인 가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MBK파트너스의 기대치를 맞출 곳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는 올해 ING생명 IPO로 투자금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상장 후에도 경영권 지분을 유지하고 매각도 재추진해야 한다. 영업조직이 계속 탄탄히 유지된다면 좋은 실적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른 자기자본 증가분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수자에 전가할 수 있을 지가 향후 매각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