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패키지 상품' 만들기 시작한 로펌들
입력 17.04.04 07:00|수정 17.04.05 10:56
[2017년 1분기] 태평양 '대관'·율촌 '보험'·세종 '공정거래'
고객 필요 높은 분야 '패키지 판매' 나서
"여전히 구호 뿐" 회의론도
형사 송무로 일찌감치 발굴한 김앤장
  • 국내 대형 로펌들이 M&A '패키지 상품'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M&A 자문 업무의 경쟁 심화와 수수료 인하 기조는 이제 상수가 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더해 대기업들이 법률 자문 업무의 내재화에 나서면서 먹거리 발굴도 쉽지 않아졌다.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해체 등 각 그룹의 M&A를 총괄해온 컨트롤타워도 하나 둘 축소 분위기로 전환하면서 각 계열사들과의 관계 강화도 숙제로 남았다.

    이에 따라 국내 유력 로펌들은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를 발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각 로펌 사이에서는 여전히 송무, 그 중에서도 그룹 총수의 형사 사건을 능가할 만한 분야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각 계열사는 국내 로펌들의 M&A 담당 변호사들을 사내로 영입해 오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차원의 M&A 강화를 선언한 이후, 각 계열사의 M&A를 담당하는 PM(Project Management)실 차원에서 실무진 보강에 나서고 있다.

    국내 로펌들의 '메가딜' 소외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하만인터내셔널 인수 과정에서 미국 폴헤이스팅스에 법률 자문을 맡긴데 이어, 최근 20조원까지 거론되는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전에도 국내 로펌은 자문을 따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로펌들은 SK그룹에 연관된 고문들까지 총 동원해 정보 탐색에 나섰지만 자문을 따내는 덴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큰 손인 대기업들이 인력 내재화에 나서며 시장은 줄고 있고, 줄어든 시장에 경쟁은 심화하면서 수수료 인하 압력은 커지고 있는 평가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큰 고객인 삼성, SK그룹은 잠시만 부재해도 “저희 자문 하면서 다른 회의하시나요?”라고 따져올 정도로 수준도 높아지고 점차 깐깐해지고 있다"라며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거래별 투입되는 자원과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도 "단순히 M&A만 해서는 정해진 예산(캡)을 100% 받으면 다행인 분위기고 기업들이 그것도 잘 안 주려는 분위기"라며 "로펌별로 가장 큰 이슈는 100%가 아니라 150~200%까지 확장할 수 있는 M&A 연관 업무를 개발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로펌들은 '고객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할 수밖에 없는 분야'를 공략해가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 관련 업무를 특화해 '상품화'한 후 M&A 자문을 위한 마케팅에 활용하는 추세가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대관’(Governance) 업무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통과 및 국정농단 사태 등을 거치며 삼성, SK, 한화 등 대기업들은 물론 네이버까지 대관 조직 및 인력을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로펌들이 이를 외주화 해 또다른 수익원으로 키우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율촌은 M&A팀이 소속된 기업금융그룹(CNF) 차원에서 ‘보험’분야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엔 보험사들의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송무를 담당하는 등 일정부분 성과로 나타났다는 평가다.

    세종은 최근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영입해 오는 등 공정거래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SK와 CJ간 CJ헬로비전 '빅 딜'이 무산되는 등 기업 스스로 풀기 어려운 공정거래 부문에서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각 로펌 내 M&A 부서의 숙제로 남았지만, 내부에선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다른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방향성들은 다들 연초부터 찾고 있는데 구체적 방법에선 헤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여전히 M&A는 술자리에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게 미덕인 험한 업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로펌도 그렇고 글로벌 로펌들도 M&A 팀에 여성 임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유리천장이 심한 것도 이 분야는 3D업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상품화를 해내는 곳은 국내 선두 '김앤장법률사무소' 밖에 없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송무, 그 중에서도 그룹 총수의 ‘형사’사건을 해결하는 것만큼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끌어 올릴 수 있는 분야는 없다는 시각이다. 김앤장은 지난해 '롯데 (Lotte)ㆍ옥시(Oxy)ㆍ폭스바겐(Volkswagen)' 송무 세 건으로만 1000억원을 웃도는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언급되는 등 매번 등장하는 위기론을 불식시키기도 했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지난 롯데 검찰수사에서 김앤장이 전공 구분 없이 변호사 150여명을 총동원한 것으로 알고있다"라며 "김앤장의 최우선순위는 당연히 큰 형사사건이고, 급박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곳도 국내에선 아직 김앤장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사이에선 지난해 한미약품의 미공개 정보 사태 당시 이야기도 회자된다.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는 "사태가 공론화되기 이전, 경영진 내부 보고가 야간에 이어지고 차일 아침 8시에 임원 소집 대책회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런데 김앤장 변호사들이 7시부터 회사에서 부른것도 아닌데 먼저 대응 방안을 들고 설명 프리젠테이션(PT)을 드리려 찾아왔다고 들었다"라며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회사입장에선 암흑속에 한줄기 빛이었을 테고, 김앤장은 자연스럽게 다른 인력을 붙이고 일을 키우는 걸 잘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은 사건 10건보다 큰 사건 1건이 낫다보니 M&A에서 적자를 보고 덤핑도 한다는 말이 돌아도 김앤장 걱정은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일화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