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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가 기업공개(IPO) 활성화를 위해 '코너스톤 투자자'(초석 투자자) 제도를 꺼내들며 자본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실제 도입을 추진할 경우, 증권거래법 시절부터 이어져온 '공모 제도'를 뿌리부터 흔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2007년 홍콩 증시에서 만들어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증시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상장 공모 전 발행사와 주관사가 핵심 투자자를 미리 유치, 주식을 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코너스톤 투자자는 확정 공모가로 지분을 인수하며, 6개월 이상 자진 보호예수를 건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의 핵심은 사전 투자자 확보를 통해 IPO 공모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온 2008년부터 홍콩을 중심으로 제도가 확산된 이유다.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가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SK루브리컨츠 등 조 단위 공모가 예상되는 거래의 공모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테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라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무게중심이 코스닥 시장으로 쏠리자,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대기업 비상장사 유치에 집중하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거래소는 지난해부터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을 위한 제반 준비를 시작해왔다. 주요 증권사 담당 실무진과 비공개 회의를 열고 수 차례 의견을 청취했다. 공모 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은 도입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을 위해선 특정 투자자에게 '특혜'를 줘야 하고, 이는 자본시장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IPO는 일반적으로 50인 이상의 투자자에게 청약을 권유하는 '공모'(모집 혹은 매출)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본시장법 제119조 1항은 '모집 또는 매출은 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해 수리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증권신고서를 낸 뒤에 투자를 유치하라는 것이다.
현재 홍콩 증시 등에서 통용되고 있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사전에 핵심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코너스톤 투자자는 증권신고서에 명단과 인수 예정 주식 수가 함께 기재된다. 신고서에 실린 코너스톤 투자자의 명단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국내에선 이 경우 '사전 공모 행위'가 된다.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 투자자를 유치하며 청약을 권유한 셈이기 때문이다. 코너스톤 투자자는 자격이나 라이선스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 투자자만 우대한다는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증권신고서 제출 이후에 코너스톤 투자자를 모집한다면 현재의 수요예측 제도와 다를 바가 없다. 이미 현행 규정상 IPO에 참여하고 싶은 기관은 자유롭게 인수 희망 가격과 수량을 제출하며, 주관사도 재량껏 주식을 배정할 수 있다.
누구에게 먼저 설명회(IR)를 여느냐의 차이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코너스톤 투자자 명단이 증권신고서에 실리지 않으면 타 기관 및 투자자의 청약을 유인하는 '홍보 효과'도 퇴색된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한 셈이다. 다만 해당 조항은 IPO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를 수정할 경우 50인 이상 다수의 투자자에게 투자를 유치하려면 정보의 격차가 없도록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공모 제도'의 근간에 손대게 된다. 상장 추진 회사 최대주주의 지배력 유지를 위한 우회통로로 악용될 소지도 다분하다.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할 부분이지만,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 올해 업무보고에선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아직 확정된 부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상장 공모 물량 배정에 대해 일부 대형 기관이 주관사에 대한 '갑질'을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 도입하면 상당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며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연내 도입을 자신하고 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미지수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전 공모 행위'로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
자본시장법 지키면 제도 '장점' 사라져
예외 허용하면 공모 형평성 훼손...특혜 시비 우려
자본시장법 지키면 제도 '장점' 사라져
예외 허용하면 공모 형평성 훼손...특혜 시비 우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1월 31일 10:2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