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놓친 한화종합화학 IPO, IB조차 관망…"2019년에 했어야지"
입력 20.03.03 07:00|수정 20.03.04 10:45
PTA 스프레드, 최근 손익분기점 아래로 2년만에 추락
중국 PXㆍPTA 투자 급증에 올해 이후 마진 압박 심화
"2018~2019년 호황 때 상장했어야...두고두고 발목"
  • '2020년 예상 대형 기업공개(IPO) 리스트'에서 한화종합화학의 이름이 지워지고 있는 모양새다. 2년간의 '반짝 호황'을 놓치며 실기(失期)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큰 관심을 보이던 국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조차 연내 상장 준비 착수엔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

    문제는 한화종합화학을 둘러싼 국제 산업 생태계가 더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은 2022년까지 한화종합화학을 상장하지 않으면, 1조5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삼성그룹에 지급하고 잔여지분을 사와야 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화종합화학은 지난달 실무선에서 주관사단 구성 여부와 상장 시기 등에 내해 내부 검토를 진행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상장 계획에 대해 확정된 사항은 없었다.

    한화종합화학은 국내 1위(생산능력 기준)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제조업체다. PTA는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와 포장용기인 PET병 제조의 원료로 쓰인다. 한화종합화학의 PTA 생산능력은 연 160만톤으로 국내 전체 PTA 생산량의 3분의 1을 담당한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한 한화시스템의 '다음 타자'로 주목받았지만, 최근엔 IB들도 2020년 상장 절차 착수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한 외국계 IB 관계자는 "한화종합화학 수준의 대형사의 경우 상장 절차 착수 전 접촉이 잦아지며 쿠킹(cooking;사전준비)이 진행되기 마련이지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며 "사실 지금 올라온다 해도 산업 업황은 물론 증시도 석유화학에 우호적이지 않아 매우 힘겨운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5년 4월 삼성그룹으로부터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해 한화종합화학으로 간판을 바꿨다. 한화그룹의 자금력이 부족해 삼성그룹이 24.1%(1024만여주)의 지분을 남겼는데, 이는 2022년까지 IPO를 통해 투자회수(exit)를 시켜주기로 했다. 만약 상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직전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배수 11배 가치에 한화그룹이 되사주기로 했다.

    한화석유화학의 현재 연간 EBITDA는 6000억원 안팎으로 계산된다. 현 실적을 유지한다면 11배 배수를 적용한 한화종합화학의 기업가치는 6조6000억원, 삼성 보유 지분 24.1%의 지분가치는 1조5500억여원이 된다. 상장이 무산되면 한화그룹이 잔여지분을 가져오며 삼성그룹에 이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한화그룹이 이미 한 차례 기회를 놓쳤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해 한화시스템이 아니라 한화종합화학부터 상장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화종합화학의 핵심 생산품목인 PTA는 업황 싸이클의 영향을 크게 타는 제품이다. 2010년대 초반까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기도 했지만, 주 소비처인 중국이 원료인 파라자일렌(PX)과 PTA 자체 생산량을 크게 늘리며 국제 시세가 폭락했다.

    일례로 같은 PTA 생산업체인 태광산업의 경우 2011년 2722억원이던 영업이익이 2012년 마이너스(-) 372억원으로 급감하며 적자전환했다. 당시 주당 180만원에 달하던 태광산업 주가는 1년만에 80만원대로 곤두박질쳤다.

    톤당 1400달러가 훌쩍 넘던 국제 PTA 시세는 2012년부터 거의 6년간 줄곧 약세를 보였다. 2014년 이후로는 600달러선을 맴돌았다.

    덕분에 PTA 제조업체 수익성의 척도인' PTA 스프레드'도 망가졌다. PTA 스프레드는 원료인 PX와 PTA 판매가와의 차이를 뜻한다. PTA 스프레드는 2014년 이후 2017년까지 100달러선 아래로 떨어졌다. PTA 스프레드 100달러는 아주 보수적인 관점에서 이익의 마지노선으로 꼽힌다. 이 이하로 떨어지면 적자를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이랬던 PTA가 스프레드가 2018년, 2019년 상반기 150달러를 넘어 200달러선까지 치솟았다. 마진이 박해지자 중국 PTA 생산량이 줄었고, 반대로 전방산업인 폴리에스터 공장 가동률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PTA업체들도 숨통이 트였다. 실적악화에 시달리던 태광산업도 2018년 7년만에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PTA 스프레드가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다시 100달러선 이하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마진이 살아나니 중국 PTA 업체들이 다시 생산량을 늘린 것이다. 원료인 PX 가격은 지난해 9월 이후 가격이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PTA 가격은 톤당 750달러선에서 600달러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다.

    당장 올해 한화종합화학 실적도 긍정적인 전망이 어려운 셈이다. PTA 업체들에게 악몽으로 꼽혔던 '2012년의 재림'이 우려되는 가운데 한화종합화학이 상장에 나선다면 '흥행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는 평가다.

    PTA 스프레드 하락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중국은 석유화학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원료인 PX 설비 신설ㆍ증설 규모는 지난해 1770만톤에 달했고 올해도 590만톤이 예정돼있다. 올해 말까지 중국 전체 PX 생산 규모는 연 3000만톤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의 3배다.

    PX 증설과 더불어 PTA 증설도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중국의 PTA 자급률은 100%를 넘어섰다. 2012년은 중국 수출길이 막혀서 생긴 쇼크라면, 앞으로는 중국의 공세에 다른 지역의 수출 시장마저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말 한화종합화학의 경쟁사 중 한 곳인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까지 울산공장의 PTA 서비를 고순도 이소프탈산(PIA) 설비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PX 밑 PTA 설비 증설 움직임으로 인해 올해 PTA 부문 업황을 어둡게 전망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증권사 IB 관계자는 "한화종합화학은 2018년 하반기에 상장을 추진했어야 한화ㆍ삼성ㆍ공모투자자가 모두 만족하는 거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2022년까지 시간이 남아있다보니 한화시스템부터 상장시키기로 결정한 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