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SKT 지배구조 개편…박정호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엇박자
입력 21.04.29 07:00|수정 21.04.30 14:13
SKT 인적분할 방안 확정
“합병 계획 無” 발표…SK하이닉스 투자는 어떻게?
SK㈜와 최태원 회장, SK하이닉스 직접 지배 무산
박정호 부회장 역할과 존재감은 더욱 커질 듯
  • 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본격화 했다. 핵심은 역시 박정호 부회장이 이끄는 SK텔레콤이다. SK텔레콤은 인적분할을 통해 주력인 통신·미디어 부문 사업회사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계열사를 지배하는 투자회사로 나뉘게 된다.

    SK텔레콤은 추후 SK㈜와 합병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배구조 개편의 목적 중 하나, 즉 SK하이닉스의 활발한 투자활동을 위한 구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여전히 남았다. SK하이닉스를 지배구조상 위치를 끌어올리는 일은 최태원 회장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만, 앞으로 이에 대한 대한 논의를 이어갈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박정호 부회장의 최대 치적으로 기록될 이번 구조 개편은 사실 최 회장이 그렸던 빅픽쳐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년 간 지체됐던 SK텔레콤의 중간지주회사 전환은 인적분할 방식으로 결론이 났다. SK텔레콤이 올해 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엔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SK하이닉스 지분을 사들여야 한다. 새롭게 시행되는 공정거래법의 지주회사 지분율 제한 때문이다.

    이사회와 주주총회, 실질적인 분할 및 재상장을 위해선 적어도 반년 넘는 기간이 소요된다. 이달 초 SK텔레콤이 다소 급하게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은 것 또한 이 같은 시간적인 요소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은 분할방식을 두고 수년간 고민을 거듭했고, 보다 잡음이 덜하면서 실효성 있는 전략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역시 오너 또는 오너가 직접 지배하는 지주회사, 각 계열사 및 경영진의 손익계산서가 다르고 각 계열사 별 투자자들의 이해관계도 상이하다보니 모든 관계자를 만족할 만한 전략을 내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시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에도 인적분할이라는 큰 틀의 분할 방안만 내놓았을 뿐, 세부적인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밑그림은 오는 6월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사회 전후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의 중간지주회사 전환에 대해선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예상했던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회사 분할을 전후로 뚜렷한 계획을 내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일단 구체적인 밑그림이 나오기까지 내부적으로 실익을 따지고 여론의 추이 지켜보자는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SK텔레콤은 분할 및 재상장 과정을 거치며 현재 시가총액은 25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합산 시가총액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주력사업인 이동통신사업(MNO) 사업 본업의 가치를 인정받고, 100조원에 달하는 SK하이닉스를 지배하는 투자회사의 가치 또한 따로 평가 받겠다는 취지다. 물론 투자회사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원스토어, 11번가, ADT캡스 등 신사업으로 분류되는 사업들의 기업공개(IPO)가 예정돼 있어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이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유력하게 제시됐던 시나리오는 SK하이닉스를 지배하는 투자회사와 지주회사인 SK㈜의 합병이었다.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를 자회사 위치로 끌어올림으로써 활발한 투자활동을 가능하겠끔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제시된 것 또한 공정거래법의 지분율 제한 때문이다. 손자회사가 기업 M&A를 통해 증손회사를 인수할 경우엔 지분 100%를 반드시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번 분할 과정에서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와 SK㈜의 합병 계획이 없다” 선언하면서 SK하이닉스의 향후 투자 방안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 합병에 대한 언급이 자칫 투자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면, 계획한 지배구조 개편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의 분할 및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전체 주주들의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SK텔레콤의 최대주주는 SK㈜로 지분 26%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지분율만으론 일반 투자자들의 동의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LG그룹의 분할안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들어 반대에 나선다면 지배구조 개편 성공을 낙담하기 어렵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회사와 지주회사의 합병을 하지 않게 되면서 이번 개편안이 추진돼야하는 당위성이 상당히 떨어지게 됐다”며 “합병이 추진될 경우 SK㈜의 주식가치가 고평가 됨과 동시에 SK텔레콤의 지분가치가 상대적으로 훼손될 여지가 있는 만큼 주주가치 제고 명목을 앞세워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SK그룹의 청사진대로 사업별로 각각 재평가 받아 몸값을 높일 수도 있지만, 분할 안건이 그룹의 캐시카우인 SK하이닉스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안정적인 사업을 이어가는 SK텔레콤이 모회사로서 SK하이닉스의 신용도를 방어해 왔다면, SK하이닉스의 모회사가 될 투자회사는 사업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평가 받는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SK하이닉스의 신용도에 SK텔레콤의 신용도 및 SK㈜의 지원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다만 분할 이후 SK하이닉스의 신용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 SK그룹 지배구조 개편 추진의 배경에는 사실 전문 투자회사를 지향하는 SK㈜의 현금을 마련하는 측면도 강했다. 캐시카우인 SK하이닉스의 현금을 배당 등의 방식을 통해 SK㈜가 활용하고,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의 주주들 또한 실질적인 이익을 향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다만 당분간은 SK㈜가 SK하이닉스를 직접 지배하게 될 여지가 사라지면서 최 회장을 비롯한 SK㈜ 주주들의 기대감도 사그라들게 됐다.

    반대로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를 진두지휘하는 박정호 부회장의 영향력은 상당히 커질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일단 분할·재상장 이후 각 자회사의 기업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일, 이를 통해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박정호 부회장에게 과제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