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發 리스크 커진 휴켐스 다시 매각설…LG화학 등 대기업 거론
입력 21.06.07 07:00|수정 21.06.08 09:43
휴켐스, 질산·DNT 독점시장
한화그룹 질산·DNT 내재화 선언
휴켐스-한화 관계도 삐걱, 휴켐스 타격 불가피
한화와 M&A·JV 협상도 결렬
탄소배출권에 주목…LG화학 등 원매자로 부상
  • 태광실업의 자회사 휴켐스의 경영권 매각 가능성이 또 다시 거론되고 있다. 최대 매출처인 한화그룹이 휴켐스가 공급하던 원자재의 내재화를 선언하면서 사업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다. 최근까지 한화그룹과의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위시한 이런 저런 협상이 언급됐으나 최종 합의에는 이르진 못했다. 현재는 LG화학 등 국내 대기업이 주요 원매자로 거론되고 있다.

    일단 태광실업 측은 매각 가능성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후보로 거론되는 LG화학은 “(휴켐스 인수 관련) 내부적으로 검토를 진행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 휴켐스의 매각 가능성이 또 거론되는 이유는 최대 매출처인 한화그룹이 휴켐스가 독점하고 있는 질산과 DNT(Di-Nitro Toluene)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겠다고 밝히며 사업적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질산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세정제의 소재이다. 폭약 제조에도 사용된다. 휴켐스는 남해화학으로부터 암모니아를 전량 수급받아 질산을 생산한다. 연간 생산능력은 약 110만톤(t)으로 국내에선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여수 산업단지에 질산 6공장 증설을 계획 중이다. 증설이 완료되면 아시아 최대 규모인 150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맞물려 가격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질산을 기반으로 제조되는 DNT 또한 국내에서 휴켐스가 독점하고 있다. DNT는 매트리스와 가죽시트의 원료인 TDI(Toluene Di-isocyanate)를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원재료다. 국내 최대 TDI 생산업체인 한화솔루션은 이제껏 DNT 전량을 휴켐스로부터 공급받아 왔다.

    한화그룹의 밸류체인에서 휴켐스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지난해 휴켐스의 경영권 매각 가능성이 거론됐을 당시에도 한화그룹이 가장 유력한 원매자로 거론됐다. 실제로 최근 한화솔루션은 휴켐스의 지분 일부를 매입하고 휴켐스의 공장 증설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협상했으나 최종 협의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오랜 거래관계를 이어온 휴켐스가 다른 기업에 넘어갈 경우 수급이 불안정해 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휴켐스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상당히 높은 마진율을 기록해 왔다는 점에서 한화그룹 측에서 인수를 충분히 고려해 볼 사안이었다”며 “다만 최종 의사결정권자들이 가격과 조건에 대한 협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한화그룹 자체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한화그룹의 행보는 빨라졌다.

    ㈜한화의 글로벌 부문은 오는 2023년까지 1900억원을 투자해 여수산업단지에 질산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현재 휴켐스의 5분의 1 수준(약 12만톤)인 질산 생산규모를 50만톤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한화 및 계열사에서 사용하는 물량 외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증착 세정용 소재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한화솔루션은 오는 2023년까지 1600억원을 투자해 DNT공장을 신설한다. 한화솔루션의 TDI 공정의 수직계열화의 일환으로, 신설이 완료되는 2024년 이후부턴 휴켐스에 의존하던 소재 공급도 차츰 내재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휴켐스의 DNT 매출은 한화솔루션, 바스프, OCI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화그룹 향 매출이 줄어들면 사업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단 한화그룹이 질산과 DNT 공장을 증설하기까진 2년가량이 남아있지만 그 기간 내 신규 매출처를 확보해 타격을 최소화하는게 중요하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고객처를 구하지 못하고 2024년부터 DNT가 유휴공장이 된다면 고정비 200억원 정도가 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휴켐스는 DNT공장을 개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켐스의 경영권 매각은 모회사인 태광실업의 사정과, 지난해 회장으로 선임된 박주환 회장의 의지가 중요하다. 일단 경영권 승계가 일단락됐고 자금마련 이슈에서 다소 벗어나 있기 때문에 당장 매각을 서둘러야하는 유인은 없다는 평가다. 그러나 사업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휴켐스의 사업을 확실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략적투자자(SI)와 협상이 진행된다면 경영권 매각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지란 분석이다.

    휴켐스 경영권에 LG화학이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는 휴켐스가 보유한 탄소배출권이다.

    기업이 유엔(UN)으로부터 온실가스의 감축량만큼 배출권을 할당받는 탄소배출권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환경부의 승인을 거쳐 기업간 거래가 가능하다. 휴켐스는 연간 160만톤 수준의 탄소배출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국내 단일 기업으론 최대 수준이다. 휴켐스는 질산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저감시설을 설치했고, 이를 인정받아 배출권을 확보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 중립 전략을 비롯해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탄소배출권의 가격도 크게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휴켐스의 전체 매출에서 탄소배출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남짓이지만, 영업이익 비중은 약 40%에 달하는 알짜사업으로 꼽힌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주력 사업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지만 탄소배출권 사업이 성장하고 있어 불확실성이 일부 상쇄되는 측면도 있다”며 “인수를 고려하는 기업 또한 휴켐스의 탄소배출권사업에 관심을 갖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