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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의 KB금융그룹 내 비중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비은행 3대장'의 맏형으로서 위신을 세웠지만, 지금은 '굴러들어온 막내'인 푸르덴셜생명에게까지 입지를 위협당하고 있는 처지다.
올해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긴 했지만, 올 초 새로 취임한 김기환 대표의 수심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손보사 경쟁력의 핵심 척도로 꼽히는 손해율이 경쟁사 대비 유리하지 못한 상황이라서다. KB손보가 주춤하는 사이 경쟁 손보사들은 손해율을 큰 폭으로 끌어내리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예고하고 있다.
KB손보는 올해 3분기 말 지배지분 기준 269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4.3%나 개선된 규모다.
KB손보 역시 다른 손보사들과 마찬가지로 보험영업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투자영업으로 만회하는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올해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보험영업손익이 1100억원이나 개선됐고, 투자영업수익은 유동성에 힘입어 9.5% 증가했다. 덕분에 희망퇴직 비용 210억원 등 일회성 비용을 계상하고도 V자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KB손보는 올해 초 5년 만에 사령탑을 교체했다. 양종희 전 대표가 지주 보험부문 부회장으로 영전하며 빈 자리를 지주에서 살림을 책임지던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김기환 대표가 채웠다. 실적만 보면 2년 임기의 첫 해를 일단 성공적으로 보내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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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손보업계에선 다소 다른 평가가 나온다.
손보업계는 지금 '대호황기'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분기 실적 기준 대부분의 손보사들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예고하고 있다. 덩치가 훨씬 큰 삼성화재보험이 KB손보와 비슷한 수준의 연간(YoY) 성장을 보일 전망이고, 경쟁사 DB손해보험은 전년대비 70%, 한화손해보험은 100% 수준의 수익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다른 손보사들 역시 보험영업수익의 개선세가 실적 상승세의 핵심이다. 특히 손해율이 낮아진 점이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 이후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보험금 지급 건수가 줄어들며 올 3분기 기준 주요 손보사들은 모두 전년동기 대비 평균 2%포인트 정도 손해율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KB손보의 3분기 말 기준 손해율은 84.2%로 집계됐다. 2020년 3분기 85.2%대비 감소폭이 경쟁사에 비해 적다. 실적 악화의 주범이었던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70%대 후반으로 내려왔지만, 대신 일반보험 손해율이 급등했다.
KB손보의 일반보험 손해율은 88%대로, 경쟁사들의 일반보험 손해율이 60~70%대에 머물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심지어 이들은 지난해 대비 일반보험 손해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데 반해, KB손보는 3분기 연간(YoY) 대비로 계속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KB손보의 실적 개선에 가장 크게 기여한 자동차보험 손해율 하락세 역시 특정 경영자의 치적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이는 온전히 정책 변경의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폭증하자, 정부는 음주 및 뺑소니운전 처벌 강화ㆍ한방 과잉진료 개선ㆍ심사평가원 진료비 심사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놨다. 향후 치료비 전액 지급제도 개선ㆍ진단서 제출 의무화 등 추가 정책이 기다리고 있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이후 차량 운행이 증가했음에도 낮은 손해율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는 "올해엔 코로나19로 인한 자산가치 상승, 자동차보험 관련 정책 이슈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손보사가 좋은 실적을 낼 것"이라며 "KB손보는 소위 '빅4'중에서 손해율 관리에 약한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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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사이 KB손보의 그룹 내 입지는 수년 전과 비교해 상당히 하락한 상태다.
KB손보는 윤종규 회장 취임 이후 잇따라 진행된 대형 비은행 인수합병(M&A)의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였다. 잇딴 인수합병 이후 '새로운 KB금융'의 사실상 첫 영업년도였던 2017년, KB손보는 33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비은행 계열사의 맏형 역할을 했다.
지금은 거듭된 수익 규모 축소에 전 같지 못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비은행 맏형' 타이틀은 KB증권이 가져갔다. KB손보보다 두 배 많은 수익을 냈다. KB국민카드도 KB손보를 추월했다. 지난해 KB금융그룹에 편입된 '막내' 푸르덴셜생명이 턱 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두 회사 간 순익 격차는 130억여원에 불과하다.
손보업 특성상 드라마틱하게 실적이 개선되길 기대하긴 쉽지 않다. KB손보의 올해 3분기 말 기준 전년대비 원수보험료 성장률은 5.4%로, 2019~202년 사이 성장률 6.8% 대비 성장 폭이 줄었다. 2%대로 떨어진 자산운용이익률이 급반등하길 바라기도 쉽지 않다는 평가다.
손해율 관리와 더불어 외형성장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김기환 대표의 취임일성인 '당당히 1등에 도전하는 KB손보'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KB손보의 시장 지위는 현재 4위로 KB금융 피인수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LIG손해보험 시절부터 KB손보에 근무해 온 한 관계자는 "KB금융이 주인이 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회사 문화가 정시출퇴근을 중시하는 은행 같아졌다는 점"이라며 "젊은 직원 대다수의 꿈이 '팀장 보직을 달지 않는(책임을 지지 않는) 차장으로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들려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2017년 비은행 1위서 올 3분기 위태로운 3위로
신임 대표 부임 뒤 실적 호전됐지만 '정부 덕분'
손해율은 경쟁사 대비 높아...향후 실적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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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10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