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도 뛰어든 '기업 ESG평가'… 넘치는 '평가기준' 우려도
입력 22.03.30 07:00
나신평, 신평사 최초로 기업 ESG평가 진출
"리스크 관리 차원"…대기업·PEF 등 수요↑
"넘치는 잣대는 혼란"vs"시장 확대 긍정적"
  • 최근 국내 3대 신용평가사 중 한곳인 NICE신용평가(이하 나신평)는 ‘기업 ESG평가(Corporate ESG Comprehensive Evaluation)’ 평가방법론을 발표하고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평가 시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국내 신평사 중 기업 ESG평가에 출사표를 낸 곳은 나신평이 처음이다. ‘기업 평가’에 특화된 신평사도 기업 ESG평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ESG 평가 업계에서는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기업 ESG평가는 현재 국내 신용평가사 3곳 모두가 진행하고 있는 ‘ESG 채권’ 평가와는 다르다. ESG채권 평가는 ESG채권을 발행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회사 전반의 ESG 요소를 점검하기보다는 해당 자금을 사용할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ESG 등급을 평가한다. 반면 기업 ESG평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당 회사의 전반적인 ESG경영활동을 분석해 등급이나 점수를 제시한다. 

    신평사들이 국내 ESG 인증 시장에서 빠르게 파이를 키워 온 점을 고려하면 이번 나신평의 기업 ESG 인증 진출이 시장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기업의 ESG 평가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한국ESG연구소(대신경제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등이 있다. 

    국내에서 ESG 개념이 보편화하면서 인증 시장도 커졌고, 2020년부터 신용평가사들도 ESG채권 인증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ESG채권 발행 자체가 적다보니 대부분 회계법인에서 발행 조건 충족 여부만 인증을 받는 정도였다. 2020년 6월 한국신용평가(한신평)가 국내사 중 처음으로 ESG채권 인증 방법론을 내놨고 이후 나신평,한국기업평가(한기평)가 뒤따랐다. 기업 및 채권 평가에 우위가 있는 신평사들은 ESG채권 등 ESG금융상품 인증 시장에서도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 대기업, 공사 등이 ESG채권 인증을 위해 신평사를 찾았다. 

    나신평 관계자는 “이제 ESG는 단순 ‘친환경’, ‘착한 기업’ 개념이 아니라 투자자들이 투자 시 ‘리스크(위험)’를 피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실제로 투자자들이 투자 대상의 ESG 점검을 통해 잠재 리스크를 찾고자 하는 니즈(필요)가 많다”며 “대기업, PEF(사모펀드) 등 수요자(의뢰인)는 다양하며 DD(Due Diligence;실사) 수준인 회계법인 등의 평가에 비해 오랜 기업평가 업력을 가지고 있는 신평사의 차별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나신평을 시작으로 타 신평사들의 잇따른 시장 진출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는 분위기다. 한기평과 한신평도 ESG금융상품 인증평가 사업 시작과 함께 다양한 관련 평가사업을 검토해 온 바 있다. 한기평은 해당 사업 진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한신평은 현재 나신평과 같은 방식의 기업 ESG평가 진출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기존 ESG 평가 업계에서는 신평사의 기업 ESG평가 진출에 대해 ‘경쟁 심화’엔 긴장하지만 크게는 관련 시장이 커진다는 점에서는 반기는 분위기다. 1차적으로는 신용평가사가 기업 평가에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고, ESG평가 데이터가 다양한 모델 수립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진출 유인이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ESG 시장에서는 무디스(Moody’s),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기업 ESG평가 업계에서 톱플레이어로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서 ESG 평가가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해당되는 평가 요소들이 경영 및 투자에 핵심으로 여겨지면서다. 예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금융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해외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 판매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지난해 8월 유사사건인 DLF 불완전 판매에 관련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승소한 결정적인 이유도 크게는 ‘ESG 요소’ 충족 여부였다.  

    손태승 회장의 경우 내부통제 체제를 설치해서 실효성이 있게 운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난 것이기 때문에 감독의 의무를 다했다고 해석됐다. 즉 ‘최선을 다했다’는 판단 아래 무죄가 나온 것이다. 반면 함 내정자의 경우 내부통제 시스템은 있었으나 실효성 있게 운영이 안 된 것이라고 판단됐다. 재판부는 “당시 은행장이었던 함 부회장 등 임직원들은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위반했다”며 금융당국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기업의 ESG 현황은 기업 스스로의 점검 뿐 아니라 투자자들이 잠재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주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예로 HDC현대산업개발도 ‘ESG 경영’에 결함이 생기면서 광주 화정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등 대형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셈이다. 사고 이후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의 기금운용자회사인 APG 등 일부 주주들은 “직접적이지 않지만 주주들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ESG 경영 점검 여부의 중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ESG 기업 평가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공급망 실사’도 포함된다. 단순히 본사 중심의 해당 회사 상황 뿐 아니라 계열사나 하도급사의 ESG 경영 여부를 살핀다. 건설업의 경우 현장에 가서 기본 안전수칙 준수 여부부터 시작해 사업장 ESG 경영 상황을 평가하게 된다. 또 이사진의 감독 의무 및 실효성에 대해 점검하는데,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서 내부통제 이슈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ESG 평가의 중요성 및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넘쳐나는 평가사와 각각의 다른 잣대가 시장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사실상 ESG 평가에는 '절대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ESG평가를 전담하는 기관들 뿐 아니라 로펌, 회계펌, 사설 기관, 여기에 신평사까지 시장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한 ESG 평가업계 관계자는 “작년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ESG 평가업계 목소리를 듣겠다고 국내 ESG평가사를 불렀는데, 많아야 5곳 정도로 예상했지만 무려 17곳이 왔다”며 “언론사 자회사, 직원이 몇 안되는 소규모 신생사도 많았는데 올해는 더 늘어났을 것 같다. 그만큼 시장 수요가 많긴 한데 기준이 너무 많아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신평사 등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생기는 것이 국내 ESG 시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단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ESG의 근본이 '상생'인 점을 고려할 때 경쟁이 심화하는 만큼 함께 시장 파이를 키워가는 그림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