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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게임은 너무 갈라파고스다. 하는 사람만 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점점 한국형 게임을 하는 유저는 줄어들고, 주가는 빠질 수밖에 없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
올해 들어 국내 게임주들의 하향세가 무섭다. 경기침체 우려와 금리인상 등 대내외 변수도 크지만, 사라진 기대감이 결정적이다. '과도기'를 겪고 있는 한국 게임사들은 약해진 게임 경쟁력에다 신산업 성과까지 증명해야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불과 2년 전인 팬데믹 시국에서 게임주는 대표적인 ‘비대면 수혜주’로 꼽혔다. 메타버스 ‘열풍’까지 더해지며 기대감을 더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게임주를 향한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게임주 시가총액은 2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대표 게임주인 엔씨소프트, 넷마블, 크래프톤의 주가는 최고가 대비 50% 넘게 폭락했다. 지난해 2월 100만원대까지 올랐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현재 36만원대로 내려앉았다. 2020년 9월 최고가 20만원을 기록한 넷마블은 최근 6만원대 후반을 횡보 중이다. 게임 대장주에 오른 크래프톤은 지난해 58만원에서 올초 20만원 초반으로 급전직하했다. 2020년 9월 상장한 카카오게임즈는 지난해 11월 최고를 찍고 하향세다.
실망한 증권사들은 게임사들의 목표주가를 줄하향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컴투스(-45.0%), 크래프톤(-43.4%), 엔씨소프트(-40.1%), 펄어비스(-38.3%), 넷마블(-37.3%), 카카오게임즈(-33.4%) 등 국내 주요 게임 기업들의 목표주가가 30∼40%대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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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선 게임주의 부진에는 매크로 영향 뿐 아니라 신작 부진, 신사업 포트폴리오 성과 지연, 기존 게임 경쟁력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게임 업계 내부에서는 무엇보다 한국 게임사들의 근본적인 ‘경쟁력 약화’가 주가 부진을 야기한다는 걱정어린 목소리가 많다. 코로나 특수로 미뤄진 한국 게임사의 ‘정체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한때 글로벌 시장에서 ‘날리던’ 한국 게임사들은 타성에 젖으며 신뢰감을 잃었다. 리니지 등 이미 증명된 IP(지적재산권)만 활용하고 새로운 성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다. 최근 엔씨소프트가 개발 중인 최근 국내에서 생소한 장르인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을 공개했지만, 게임 애호가들의 반응은 “중간에 엎는 것 아니냐”는 냉담한 반응이 이어졌다.
‘원 히트(one hit)’ 이후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는 게임사도 다수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히트시키고 지난해 11월 후속 게임인 ‘뉴스테이트’를 출시했으나 흥행에 참패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베스파도 2017년 ‘킹스레이드’ 성공 후 후속작들이 모두 부진해 최근 상장 폐지의 기로에 섰다.
한국 게임이 특성을 잃어가는 동안, 글로벌 게임 시장은 판도가 크게 변했다. 특히 중국 게임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삼성 갤럭시의 게임최적화서비스(GOS) 이슈가 불거졌을때, 폰 성능의 가늠자로 중국 개발사 호요버스의 '원신'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중국의 게임 개발력은 무섭게 성장했다.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되게 잘만든다”는 평이 나온다. 국내 게임은 서비스를 시작해서 1년쯤 지나야 어느정도 콘텐츠가 갖춰지지만, 중국 게임은 값싼 인력 등을 무기로 이미 1년치 콘텐츠를 갖추고 시작한다. 유저들은 ‘조금 하면 할 것 없는’ 한국 게임이 아닌 ‘할게 너무 많은’ 중국 게임을 점점 더 찾고 있다. 유저들 입장에선 게임이 중국산인지 한국산인지 보다는 퀄리티가 먼저다.
무엇보다 게임 업계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요즘 애들은 게임을 안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게임은 유저가 있어야 살아남고, 가장 중요한 유저는 미래 고객인 어린 유저들이다. RPG에 집중된 국내 게임들은 돈과 시간을 많이 쓰면 이기는 방식이 많다. 그렇다보니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어린 유저들은 애초에 시작을 안한다. 시간을 많이 안들이고 한 판씩 승부를 보는 ‘리그오브레전드’나 ‘오버워치’ 같은 외국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의 게임 실황 방송을 시청하는 식이다.
게임업계 1.5세대에 속하는 한 관계자는 “사실상 3N(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도 끝났다. 새로울 게 없다. 이젠 3N이란 단어를 쓰면 안될 것 같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엔씨는 리니지 말고는 없고,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는 중견개발사 네오플을 인수한 것이고 자체 개발로 히트한 게임은 없다”며 “넷마블은 예전에는 상위 10위권에 게임 대여섯개가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20위권에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단순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3N’의 의미는 흐려졌다. 배틀그라운드의 크래프톤이 현 시점에선 엔씨소프트보다 시총이 1.5배 큰 대장주다. '오딘'에 이어 '우마무스메'를 매출 상위권에 안착시킨 카카오게임즈는 한때 넷마블의 시가총액을 뛰어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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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들은 '뒤쳐진 규제'가 성장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간담회는 넥슨·넷마블·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위메이드·카카오게임즈·크래프톤·펄어비스등 대표사 대표들이 참여해 박보균 문체부 장관에게 P2E(Play to Earn) 규제 완화 등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실상 메타버스, 블록체인, P2E 등 신산업들이 근본적인 게임사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코로나 거품이 꺼지면서 “과연 대중이 ‘좋은 그래픽’ 속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는 것이 맞나”라는 의문이 나온다. 게임 애호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의 수요가 있는지, 애초에 의미는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게임회사들의 메타버스·블록체인·P2E 사업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P2E 게임이 기존 게임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유저가 돈을 버는’ 구조다. 하지만 게임사들은 유저가 돈을 벌 게 해준 적이 없다. 유저가 돈을 벌면 그만큼 회사가 ‘덜 벌어야’ 하는데,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P2E 방식이 근본적으로 ‘게임’의 취지에 맞냐는 회의론도 있다. 게임에 수익이 연결되다보면 힘 있는 소수가 독식하는 길로 가기 쉽다는 지적이다. 예로 위메이드의 ‘미르4’ 게임에서는 게임에서 얻은 ‘흑철’이란 아이템을 코인인 위믹스와 교환해 현금화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게임 내에서도 자리 뺏기와 유저 살해(PK)가 수시로 일어난다. 소수의 ‘강자’들이 힘을 합쳐 중간층 이하의 유저들을 배제할 수 있는 구조다.
게임사들이 게임 경쟁력과 미래 성장성까지 증명해야 하는 가운데 ‘주가 부양’을 향한 높은 의지는 아직 포착되지 않는다.
게임주들의 폭락이 두드러진 최근 상황에서도 발빠른 대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증권업계에서는 게임사들이 IR(Investor Relations)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IR 등에 매우 신경을 쓰는 타 산업군에 비해 게임사들은 ‘게임만 잘 만들면 되지’라는 마인드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게임업계 분위기가 창업주들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평도 있다. 대중에 드러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보니, 유독 게임업계에서 ‘의장 시스템’을 도입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 의장들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소위 '귀찮은 일'들은 전문 경영인에 맡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취재노트
올들어 대표 게임사들 주가 '반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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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2년 07월 0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