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난에 '무늬만 ELB' 무더기 발행…증권사로 옮겨붙는 유동성 확보 경쟁
입력 22.12.16 07:00
하반기 증권사 ELB 발행 8조…중소형社 지난 1개월 집중
기초자산 삼성전자 주가 '5배' 뛰면 '0.001%P' 더주는 구조
실상 고금리 단기채…증권사도 뛰어든 리테일 자금 모시기
은행권 수신금리 경쟁 판박이 격…"당국 심기도 불편할 듯"
  • 증권사가 일반 채권과 다름없는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무더기로 찍어내고 있다. 기관을 상대로 기업어음(CP)이나 단기사채를 통한 조달이 불가하자 대안으로 ELB를 통해 리테일 자금을 긁어모으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국 개입과 거시환경 변화로 조달 환경이 조금씩 숨통을 트여가고 있지만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은행에서 다시 증권사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14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올 하반기 들어 국내 증권사의 ELB 발행 총액은 공모와 사모를 합쳐 7조911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개월 동안은 특히 중소형 증권사의 발행이 집중됐다. 키움증권의 경우 하반기 발행한 ELB의 70%가 지난 한 달 새 발행됐다.

    ELB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원금보장형 상품으로 통한다. 기초자산의 가치 상승에 맟춰 수익률을 제공하지만 원금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채권과 비슷해 증권(Securities) 대신 채권(Bonds)으로 분류된다. 증권사 외 은행이나 일반 회사도 발행이 가능하지만 현재 증권사를 중심으로 안전하면서도 매력적 금리를 제공한다는 점을 내세워 대거 발행 중이다. 

    시장에선 리테일 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경쟁이 증권사로 옮겨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통상적인 연말 퇴직연금 시장 금리 경쟁과 다르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CP나 전단채 등으로 단기자금을 융통할 수 없기 때문에 공모 ELB를 통해 고객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라며 "상품 설명서를 확인해 보면 그냥 만기 6개월, 12개월짜리 채권이랑 다른 게 없다"라고 설명했다.

    BNK투자증권은 13일 삼성전자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100억원 규모 ELB 공모발행 신고서를 공시했다. 만기일인 내년 12월 15일까지 기초자산인 삼성전자 주가가 최초 기준가격의 5배를 넘으면 수익률 7.151%를 제공하고, 5배를 넘지 못하면 7.150%를 제공한다. 납입일 이틀 전인 14일 현재 6만300원에 거래되는 삼성전자 주가가 1년 후 5배(약 30만원)로 상승할 경우 수익률이 단 0.01bp(1bp=0.01%) 오르는 구조다. 

    사실상 BNK투자증권이 1년 만기 채권을 금리 7.15%에 발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1달 동안 증권사들이 발행한 ELB도 이처럼 코스피 200 지수나 삼성전자 보통주 등 단일 기초자산에 연계해 발행됐다. 기초자산 상승률에 따른 수익률 차도 대부분 1bp 안팎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같은 ELB 대부분이 각 증권사 준법감시인의 심사를 통과해 시장에 쏟아지고 있지만 법적인 문제를 따지기는 어렵다는 평이다. 상품 설계가 통상적이진 않지만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점과 발행사 신용등급 하락이나 자산 가격 변동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공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LB는 ELS와 달리 발행사가 파산하지 않는 이상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ELB를 찍어대는 증권사는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 부실 우려 등으로 단기자금 융통이 어려워진 중소형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아직 내년 시장 환경을 점치기 어려운 가운데 고금리 ELB를 발행하며 신용 위험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 당국이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 인상을 주시하며 6%를 넘보던 고금리 경쟁을 눌러놓자 자금 사정이 더 급한 증권사들이 7~8%대 고금리 ELB를 들고 나온 모양새이기도 하다. 

    금융권 한 준법감시인은 "ELB의 경우 발행사가 부도나면 못 받는 구조라 신용도가 중요하다. 건전성 우려가 가득한 상황에서 기관이나 고객으로부터 소외되는 증권사로선 대안이 마땅치 않겠지만 고금리 경쟁이 역마진으로 이어지면 신용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며 "당국 입장에서도 은행권 특판 광고가 증권사 ELB 광고로 대체된 상황이라 고객 자금이 계속 고금리를 찾아 떠도는 상황이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