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국면 놓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2분기 들어 하루살이 분석만 되풀이
입력 25.04.23 07:00
2분기 정치·정책·외교·수급까지 중대 변수 대거 충돌 양상
향후 전망 설명할 근거 실종 분위기…사실상 판단 유보中
한동안 깜깜이 국면 불가피…정부도 기업도 예측불가 평
정부 협상·조기 대선 동시 진행…당장 냉정한 평가 어려워
  • 트럼프발(發) 관세와 수출 통제 확대,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본격화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둘러싼 시장 전망은 하루 단위 해석에 그치고 있다. 증권가에선 1분기 실적 반등을 근거로 낙관적 목소리를 내놓기도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다. 시나리오만 무성할 뿐 눈으로 확인된 변화가 없는 탓이다. 한미 관세협상과 조기 대통령 선거전까지 겹치며 악재인지 호재인지 모를 소식만 두서없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2분기 들어 반도체 산업은 정치, 정책, 수급, 실적, 외교까지 중대 변수가 한꺼번에 충돌하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는 H20의 중국 수출 계획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고 인텔은 고객사에 수출 통제 적용 가능성을 통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SML과 같은 유럽 반도체 장비사까지 압박해가며 전선을 넓히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부는 오는 24~25일 중 워싱턴DC에서 한미 재무·통상 장관이 동시에 참여하는 한미 고위급 협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조기 대선 모드에 돌입한 정치권에선 연일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에 대한 100조원, 200조원 규모 공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대미(對美) 협상의 실효성은 물론 협상 결과물도 없이 남발하는 공약들이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미국이 90일 동안 상호관세 적용을 유예한다고 해서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구체적으로 확인된 리스크가 아무것도 없다"라며 "1분기 실적을 가지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당장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이후에 바뀔 것들인데 누구도 알 수 없다 보니 시실상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증권가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연간 실적에 대한 눈높이를 조금씩 올려잡고 있다. 1분기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핵심 제품의 출하량이 늘었고 고객사 재고가 줄어들면서 가격도 개선되고 있어 일단은 바닥을 통과하는 중이라 진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마이크론이 관세 부담을 고객사에 전가하고 엔비디아, 인텔의 실적 전망이 오르내리는 상황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비켜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결국 반도체 산업 전반이 상반기 내내 깜깜이 국면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개별 칩 제품과 모듈에 적용되는 법리나 통상 규제도 다르고, 해외 생산기지마다 부품 조달이나 수출 루트도 천차만별이라 반도체가 관세 품목에서 제외된 건지 아닌지 결정 난 것이 없다"라며 "정부 측에서도 매일 바뀌는 변수를 따라가기 벅찬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2분기 이후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협상에서 선방하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중 갈등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양사가 중국 시안과 우시에 보유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대중(對中) 수출 의존도를 고려하면 관세 외 변수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 기업인 애플 역시 중국 생산기지 문제로 관세 정책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논리라면 중간재를 공급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도 피해가 전이될 수밖에 없는 식이다. 

    우후죽순 등장하는 선거용 AI·반도체 공약들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AI와 반도체 산업 지원에 천문학적인 자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마냥 반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소버린 AI, 독자 반도체 생태계 구축과 같은 구상이 등장하고 있는데 민간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안을 정부 주도로 소화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적지 않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각 후보자 캠프에서 내놓는 AI, 반도체 관련 공약들이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도 있고 기업들의 대관 역량에 맞춰 부적절한 구상에 힘이 실리는 양상"이라며 "미중 관계와 같은 거시 변수에서 자유롭기도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