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타이밍"…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 불똥은 어디까지 튈까
입력 25.04.29 10:35|수정 25.04.29 10:36
취재노트
통신 3사 향한 불신에 기폭제 역할…유심 해킹 불안감 확산
선거에 확대경영회의까지…해킹보다 심각한 타이밍 리스크
인프라 신사업 확장 과정 보안사고…'AI 전문' 간판에도 타격
'사업 정리' 중심 경영진 KPI 등 그룹 리밸런싱에 불똥 튈까
  • 주말을 지나며 SK텔레콤의 가입자 유심(USIM) 정보 탈취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유영상 SKT 대표가 전 가입자 대상으로 유심칩 무상 교체를 약속하고 고개를 숙였지만 여론은 아랑곳 않는 분위기다. 정확한 경위나 사실 관계를 확인할 틈도 없이 벌써 수천만원 수준 사고·피해 사례가 보도되고 집단행동이 예고된다. 

    SKT 내부적으로도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그간 개인정보 유출 사고 사례로만 보면 통신 3사가 도긴개긴인데, SKT만 저지른 잘못 이상으로 비난받는 것 아니냐는 억울한 심정이 새 나온다. 재무 담당자들 사이에서 "B2C 업체는 이런 일이 생기면 다 돈이다"라는 투의 발언을 내놨다는 것이다. 

    실제로 SKT나 KT, LG유플러스까지 통신 3사들이 그간 교대로, 골고루 보안 사고를 일으켜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 보자면 정부 라이선스로 수천억원 이익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통신 3사들이 골고루 불만일 수밖에 없다. 3사가 누려온 수혜를 감안하면 잘못의 크기 순으로 공평하게 돌팔매질해달라 요청하기도 곤란하다. 

    누적된 불만이 예사롭지 않은 때 하필이면 SKT '순번'이 돌아왔다고 볼멘소리 하기엔 SKT 나 홀로 정보보호 투자비를 줄여온 정황도 재조명되고 있다. 2022년 이후 2년간 KT와 LG유플러스가 정보보호 투자비를 각각 19%, 116% 늘리는 동안 SKT는 4% 줄인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SKT가 지출한 정보보호 투자비는 약 600억원으로 절대액 기준으로도 KT(1218억원)와 LG유플러스(632억원)에 비해 낮았다. 

    해킹 사고를 기점으로 여론이 들끓는 상황도 우려스럽지만 사고가 일어난 시점이 특히 최악이다. 까딱하면 정무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으니 5월 중에는 수습을 마쳐야 할 것이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6월에는 조기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SKT의 주력인 이동통신(MNO) 사업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인만큼 그룹 내에서 대중 접점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큰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비난 여론에 탑승할 유인이 높아진 때에 2300만명 규모 유심칩 교체 대란이 불거졌다. 

    유 대표가 선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보상책을 내놓으면서 혼란만 커졌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선거철마다 통신비 인하 같은 선심성 공약이 세력 불문 단골 소재로 오르내린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사태가 정치적 불똥으로 계속 재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이미 해킹 사고를 특정 테마주나 선거자금 출처와 결부 짓는 뜬소문까지 등장했는데, 사실 관계를 떠나서 선거철에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라며 "미국 기업이었다면 천문학적 소송에 처해졌을 거라는 식의 감정적 반응도 나오는데 일부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정치권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그룹 내 일정도 만만치 않다. SK그룹 일부 계열사들은 이미 오는 6월 열릴 확대경영회의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해당 회의는 SK그룹 계열사 전반의 사업 방향과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해킹 사고의 여파가 정무 리스크로 번지면 계열 핵심 사업장에 대한 관리 문제가 6월 회의의 새 화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투자업계에서 SKT의 그룹 내 포지션은 재무적으로는 무풍지대, 사업적으로는 인공지능(AI) 사업의 교두보 정도로 통한다. 계열사 전반이 파이낸셜 스토리로 재무 부담을 키우는 동안 기존 포트폴리오만으로도 매년 5조5000억원 안팎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꾸준히 벌어내면서 이런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 사업을 잘 했다기보다는 다른 계열사에 비해 위험을 덜 감수한 상황이 어부지리 격으로 작용했단 식이다. 작년 6월 리밸런싱(사업 조정) 이후 그룹의 AI 관련 신사업에서 입지가 두드러진 배경에도 이 같은 재무적 안정성이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신사업과 재무적 투자자(FI) 해소 문제는 인적분할한 SK스퀘어로 이미 다 넘어갔고 다른 계열에 실적 변동성도 낮다 보니 작년 리밸런싱 이후 입지가 많이 올라간 면이 있다"라며 "유영상 대표의 신사업 야심에 비해서는 그간 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마침 겸직하고 있던 그룹 AI 태스크포스(TF)는 추진단으로 승격했다. 이후 계열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SKT로 모으는 논의까지 오갔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AI 전문 기업을 자처한 SKT가 기본적인 고객 정보 보안조차 지켜내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회사의 전략적 포지셔닝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B2C에서 불거진 고객 피해와 보상 문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AI 반도체, 클라우드 구축 등 인프라 기반 B2B 신사업으로의 확장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기업 고객들은 국내 민간 가입자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는 B2B 사업에 잔뼈가 굵은 빅테크가 즐비하다. 

    SK그룹 리밸런싱 작업 자체로 불똥이 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FI와의 분쟁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 것이 경영진의 핵심 성과지표가 되면서 기본적인 사업장 관리가 뒷전이 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SKT의 경우 다른 계열사에 비해 FI 청구서 문제가 덜한 편에 속하지만, 내달까지 SK브로드밴드 FI 지분 매입을 위해 1조1500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를 위해 카카오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식과 함께 해킹 사고가 불거졌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계열 전반에 투자 전문가를 자처하고 그쪽으로 성과를 내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보니 사업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그룹 수뇌부 회의를 전후해 인수합병(M&A)이나 투자유치 등 방식으로 성과 경쟁에 나서려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라며 "가장 안정적이어야 할 통신 사업에서 대형사고가 터졌으니, 경영진 KPI 설정 문제 등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