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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롯손해보험이 한화손해보험에 흡수합병되는 절차에 들어갔다. 한때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주도한 신사업으로 주목받았던 캐롯손보는 디지털 손보사로써 혁신을 추구했지만, 규제 환경과 수익성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한화손보는 29일 자회사인 캐롯손보의 주식 2586만4084주를 약 2056억원에 취득 완료했다. 티맵모빌리티, 현대자동차, 알토스벤처스, 어펄마캐피탈 등 주요 투자사들이 보유한 지분이다. 한화손보의 캐롯손보 지분율은 59.57%에서 98.3%로 상승했다.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제외한 유통주식 전량을 인수한 모양새다.
이후 흡수합병 수순이 예상된다. 한화손보는 올해 내 새로 부서를 신설해 캐롯손보의 마케팅 관련 조직을 흡수하고, 스텝부서 등은 기존 한화손보 조직에 포함시키는 안을 계획 중이다.
이번 조치는 캐롯손보의 지속된 적자가 배경이다. 캐롯손보는 2022년 832억원, 2023년 748억원, 지난해 65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화손보는 이 기간 동안 세 차례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2318억원을 지원했으며, 이번 투자사 지분 취득까지 포함하면 캐롯손보에 투입된 자금은 약 45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일부 투자사들은 투자금 대비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3년 기준 캐롯손보의 기업가치는 약 1조원으로 평가됐지만, 이번 거래에서는 절반 수준의 가치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를 기대했지만,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 강화에 따라 조기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캐롯손보의 지난해 말 킥스(K-ICS) 비율은 156.2%로, 전년 대비 125.1%포인트 하락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강화된 건전성 규제 환경 속에서 캐롯손보의 독립 경영이 사실상 어려워졌고, 투자자들도 한화손보와의 합병을 통한 정리 절차에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화 측을 포함한 전략적투자자(SI), 재무적투자자(FI) 모두 캐롯손보의 향방에 대해 오랜 기간동안 고민해왔지만, 결국 별도 법인으로는 당국의 규제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화손보 역시 자회사의 장기 적자를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캐롯손보는 김동원 사장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인식됐던 만큼, 지속된 적자는 경영평가 측면에서도 부담 요인이 됐을 것”이라며 “결국 내부적으로도 정리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이번 결정의 주요 배경으로 디지털 손보사의 자본력 한계와 강화된 규제환경을 꼽았다. 한화손보 관계자는 “재무건전성 유지를 위해 꾸준한 자본확충이 요구되고, 이에 대해 재무건전성 해결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 합병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라며 “이번 결정은 김동원 사장과 무관하게 한화손보와 캐롯손보 경영진의 결정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례는 보험업계에서 재벌 오너 일가가 보험업 혁신을 시도했지만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또 하나의 사례로 남게 됐다. 과거에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혁신을 시도했으나, 적자 누적에 따라 사업을 철수한 바 있다.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디지털 손보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구조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장기보험 중심의 전통 보험업 모델과 달리, 디지털 손보사는 단기 보험 상품 위주로 수익구조를 짜다 보니 안정적인 이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컨설팅 출신 경영진의 한계도 지적한다. 캐롯손보 설립에 핵심 역할을 했던 정영호 전 대표는 액센추어 금융사업부 이사를 거쳐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에 합류한 인물이다.
컨설팅 출신의 상무급 인사가 신사업을 총괄하고, 신사업이 분사해 캐롯손보로 출범한 이후 곧바로 대표이사직에 발탁된 것을 두고 당시 한화생명에서 디지털사업을 총괄하던 김동원 사장의 의중이 실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보험업계에서는 김 사장이 직접 캐롯손보 대표이사직에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다만 캐롯손보가 자리를 잡지 못하며 이는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미 포화된 자동차보험 시장 속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속도가 너무 더뎠고, 캐롯손보의 적자는 누적되기만 했다. 정영호 전 대표 역시 지속된 적자의 책임을 지고 2022년 퇴진해야만 했다.
정 전 대표 퇴진 이후엔 '비전'을 가지고 캐롯손보를 이끌 인사가 마땅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화생명 출신인 문효일 사장이 후임으로 선임됐지만, 규제 강화와 비즈니스 한계라는 복합적 문제를 극복하진 못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디지털 혁신’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전통 보험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결국 규제가 시장 구조를 좌우하는 보험업 특성을 간과한 전략 실패였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야심작’ 꼬리표 달린 캐롯손보
규제의 벽 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컨설팅 출신 정영호 전 사장 기용하며
디지털 혁신 내세웠지만 결국은 '실패'
규제의 벽 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컨설팅 출신 정영호 전 사장 기용하며
디지털 혁신 내세웠지만 결국은 '실패'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4월 3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