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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SK그룹은 확대경영회의를 통해 리밸런싱(사업 조정)이란 화두를 던졌다. 재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던진 듯했지만 실상은 파이낸셜스토리의 조용한 퇴장이나 출구전략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룹 차원의 경영 실책은 가리고 거시 환경 악화라는 불가항력을 내세워 선제적 대응에 나서는 면모를 덧씌웠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SK하이닉스의 눈부신 성과와 재무적투자자(FI)의 조력으로 일부 선방하는 듯하던 리밸런싱 작업은 수개월 만에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SK㈜의 전방위 신용보강 작업에도 중간지주사들은 사업장 관리와 FI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 올해 확대경영회의가 또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계열 사장단들의 고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투자업계에서도 벌써부터 이번 확대경영회의에 오를 만한 안건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안으로는 6월 조기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고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 5월 황금연휴 일정을 감안하면 일찌감치 사업장을 살펴보고 수뇌부 보고에 앞서 플랜 B, C까지 상세 시나리오를 설정해야 한다. 정리해야 할 사업들이 여전히 많이 많아 올해까지는 리밸런싱 테마가 지속될 거란 관측이 많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나 SK에코플랜트, SK온 등 SK㈜에서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던 계열사에서 특히 바쁜 분위기가 전해진다"라며 "올해 들어서 SK그룹의 의사결정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이르면 5월 중 일부 자산 매각이나 추가 구조조정 등 구체적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라고 말했다.
관심의 한 축은 SK㈜가 올해에도 중간지주사들의 지원에 나서느냐다. 이미 시장에선 SK이노베이션이나 SKC, SK에코플랜트 등 계열사들이 SK㈜에 재차 손을 벌려야 할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
SK㈜가 보유한 알짜 사업장을 뚝 떼어줄 때만 해도 숨통을 트일 거란 반응이 많았지만 결산 이후 몸이 너무 무거워졌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나 SK에코플랜트 모두 순차입금과 이자 비용이 늘면서 부채를 줄이기 힘든 상황이다. 덩치가 작은 친환경 사업은 정리했지만 큰 돈을 들여 키워낸 SK IET나 리뉴원·리뉴어스 등 자회사들의 매각 작업이 늘어지며 지난해 수혈에 따른 모멘텀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 역시 고민이 커질 상황으로 풀이된다. 작년 진행된 합병 작업은 중장기 신용보강 외에 회수보장 약속을 받고 투자한 FI를 달래는 성격도 강했다. FI들의 회수 불확실성이 커지면 부담이 최상층 SK㈜를 향할 수 있다. 계열에 대한 지원 책임을 끝까지 져야 하겠지만, 개별 상장사로서 SK㈜ 투자자들에게 내건 투자전문형 지주사 정체성도 지켜야 한다. SK스페셜티에 이어 SK실트론 매각대금까지 손에 쥔다면 자회사 수혈보다 수익성이 높은 곳에 재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의 경우 SK E&S와 합병 과정에서 발행한 신주 덕에 SK㈜ 지분율이 55%까지 늘었는데, 유상증자를 한다면 모회사가 절반 이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라며 "SK㈜ 내에서도 새로운 투자처 발굴에 나서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 자회사들도 신경 쓰이는 눈치"라고 전했다.
SK온을 위시한 2차전지 사업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전략 수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외부 투자자 유치와 모회사 수혈, 합병, 고객사 대출부터 투자 계획 축소까지 가능한 대부분 카드를 소진한 상황인데, 올 들어 시장 전망은 또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작년 물밑에서 논의된 빅딜은 물론 공장 단위로 해외 법인 자산을 따로 매각하는 방안 등이 오르내린다.
1년간 실행한 리밸런싱 작업의 맹점부터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작년 6월을 기점으로 부회장단이 퇴진하고 사장단 교체까지 단행했지만 근본 사업 경쟁력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늘면서다. 자산 매각과 투자자 유치, FI를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 조율까지 지속됐지만 본질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 이해도와 활용 역량은 분명 최상위 급이지만, 결국 근본 사업 경쟁력이 따라줘야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라며 "그룹 내 임원진을 비롯해 사장단까지 어떤 딜을 성사시켰느냐에 주목하는 경향이 여전히 짙다. 실질 사업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그룹 내에서 가장 안정적이어야 할 SK텔레콤이 유심(USIM) 정보 탈취 문제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정부 인허가 특권으로 보호받는 수혜 업종마저 비상국면에서 조직 내 안정을 해치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SKT 역시 작년 리밸런싱 이후 인공지능(AI) 교두보 역할을 부여받고 그룹 내 자산을 활용한 투자 유치, 신사업 확장 및 FI 협상 문제에 집중해왔던 만큼 파장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7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까지 발표했지만 비난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룹은 물론 오너 개인사까지 구설에 오르고 있다 보니 회의를 앞두고 유영상 대표를 비롯한 SKT 경영진의 향후 입지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늘고 있다. 정치권에선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키우는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6월 회의 시즌을 앞두고 또 계열 사장단 사이에서 자산 매각이나 신규 투자 등 성과를 내놓고 있는 분위기인데, 성과지표(KPI)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들이 나온다"라며 "사업 전문가들보다는 자칭 딜 전문가들이 성과를 인정받는 분위기여서 리밸런싱이 땜질 처방으로 끝날까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파이낸셜스토리 출구전략 리밸런싱도 수개월 만에 한계
계열 전반 비상상황에 SK㈜ 계속되는 지원 부담도 딜레마
"여전히 사업보다 딜 우선시"…리밸런싱 모멘텀 반감시켜
SKT마저 해킹 사고…근본 사업 경쟁력부터 챙겨야 한단 평
계열 전반 비상상황에 SK㈜ 계속되는 지원 부담도 딜레마
"여전히 사업보다 딜 우선시"…리밸런싱 모멘텀 반감시켜
SKT마저 해킹 사고…근본 사업 경쟁력부터 챙겨야 한단 평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