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사들, SKT '유심사태' 예의주시…일단은 '수익성 악화 여부'에 초점
입력 25.05.08 07:00
"점유율 변화·유심교체비용·정부 제재 등 모니터링할 것"
증권가, 사고 영향으로 1000억원 내외의 실적 감소 예상
2년 전 LG유플러스 사건 고려하면 영향 크지 않을 거란 전망도
  • SK텔레콤(이하 SKT)의 유심(USIM) 해킹 사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신용평가사들도 이번 사태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당장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향후 수익성이 얼마나 악화될지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평이다. 

    이번 사고는 SKT 가입자들의 유심 정보와 단말기 고유식별번호(IMEI), 인증키 등 주요 정보가 저장돼 있는 정보·인증 관리 시스템 HSS(Home Subscriber Server) 서버가 해킹되면서 발생했다. 지금까지 발생한 국내 통신업 유출 사고 중 잠재적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오는 8일 국회에서 SKT 유심 해킹 사건 청문회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소환하는 등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사고 규모가 작지 않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내용이 많지 않아 신용평가 3사 모두 코멘트에 신중한 입장일 것"이라면서 "현재로서는 의견을 내기 어렵지만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용평가사들은 공통적으로 가입자 이탈, 유심 교체비용, 정부 제재 등을 향후 모니터링 요인으로 꼽았다. 이번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총 비용과 점유율 변화 등을 종합해 수익성이 얼마나 악화하는지를 살피겠다는 것이다.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번호 이동 등 타사로 이탈하는 규모와 최종적인 유심 교체비용, 정부 과징금 규모와 제재 방안 등의 윤곽이 드러나야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어 실적을 보고 후행 판단할 것"이라면서 "사실 비용도 문제지만 망가진 브랜드 평판에 대한 영향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2일 발간한 리포트를 통해 직접적인 지출로 예상되는 유심 교체비용과 과징금은 최대 4000억원을 웃돌수도 있지만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했다. 그보다는 신용도를 지지하고 있는 최상위권 시장지위 하락 가능성과 점유율 유지를 위한 마케팅 비용 지출 확대 등이 신용도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부동의 1위 사업자 SKT는 2월말 기준 2309만명의 가입자 수를 보유하고 있다. 2위 KT(1334만명)와의 격차가 작지 않지만,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KT와 LG유플러스로 약 9만명이 이탈했으며 알뜰폰으로 번호 이동한 수치는 집계되지 않아 실제 감소폭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지난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유심 부족 해소 시까지 신규 가입을 중단하는 행정지도 조치를 내리면서 평소보다 가입자 이탈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국회 청문회 등에서 언급된 번호이동 관련 위약금 면제가 현실화할 경우, 가입자 이탈속도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김정찬·정다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심 교체 비용과 정보보호 투자비 증가,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한 마케팅 비용 증가 등을 고려해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를 800억원 하향 조정했다. 이들은 "통신 및 IT 업종에서 데이터 보안은 재무적으로도 중대한 ESG 이슈"라면서 "과징금 상한액 기준이 위반행위 관련 매출액의 3%에서 전체 매출액의 3%로 변경돼 재무 리스크가 높아졌고, 소비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과 관련해 배상액 규모는 불투명하지만 장기간 소송 리스크가 지속될 수 있다"고 짚었다. 

    정지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KT의 유심 무상교체 비용은 최대 350억원, 과징금은 수백억원 수준으로 전망하면서, 가입자 이탈 등을 고려해 이번 사고가 SKT의 올해 실적에 약 1116억원의 감소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사고의 여파가 오는 6월 상반기 정기평가에 바로 반영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적 등 객관적인 지표가 나오기 전에는 평가에 반영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럼에도 6월 정기평가 과정에서 최대한 현황을 반영해 평가하겠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신평사 연구원은 "상황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어 영향을 파악하는 중"이라면서 "실적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6월 정기평가를 진행하면서 가입자 수 변화 추이 등을 지켜보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생각보다 이번 사고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년 전 LG유플러스의 정보 유출 사건 때에도 가입자 수 이탈은 제한적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LG유플러스는 고객인증시스템(CAS) 해킹으로 약 29만명의 정보가 유출됐고, 6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앞선 신평사 관계자는 "통신사의 수익성은 결국 가입자 수와 직결되기 때문에 점유율이 중요한데, 2년 전 LG유플러스 때는 그 여파가 크지 않았다"면서 "높은 수위의 징계나 과징금을 부과 받으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고 에둘러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2위 KT와의 격차가 작지 않고, 워낙 현금흐름이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실적을 봐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등급에 아주 큰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