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공염불에 3.5억달러 M&A가 빅딜?…삼성전자의 민망한 B&W 인수 홍보
입력 25.05.13 07:00
Invest Column
매해 최고경영진 앞세워 빅딜 자신하더니
8년만에 자회사 통해 5000억 오디오 브랜드 인수
삼성이 1억5000만원짜리 초고가 스피커 홍보할 때일까?
"M&A 성과 없는 경영진 조바심의 발로" 평가도
  • 삼성전자가 하만(Harman)을 통해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미국 마시모(Masimo)사의 오디오 사업부(이하 사운드유나이티드, Sound united)를 인수한다. 2017년 80억달러를 들여 하만의 경영권을 확보한 이후, 8년만에 처음으로 성사시킨 나름 대형(?) M&A로 기록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진들은 지난 수년 동안 공식 석상에서 대규모 M&A를 검토하고 있고, 또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보여줄 것을 자신해 왔다. 이를 통해 투자자들은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삼성전자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또는 과거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 대규모 M&A를 기대했지만 정작 내놓은 결과물은 3억5000만달러짜리 오디오 브랜드 인수였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다퉈 수십조원 규모의 M&A(Ex. 시놉시스(Synopsys)의 앤시스(Ansys) 인수, 2024년 325억 달러)를 성사하고 또 언제든 대규모 거래가 등장할 것이란 기대감을 키우고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M&A 규모를 차치하고 본업과의 확실한 시너지 효과를 입증할 수 있다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룹의 본체인 삼성전자도 아닌 자회사 하만을 통한 이번 투자는 하만의 브랜드 확장에 대한 기대감 외에 전사 차원의 시너지와 관련한 구체적인 청사진도 제시되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사운드유나이티드 인수 계약을 체결한 직후 '빅딜'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B&W의 1억5000만원짜리 초고가 스피커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미 10년전 은퇴한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이 홍보대사로 활동한다는 제품도 소개했다.

    이례적으로 인수 가격(3억5000만달러)도 공개했다. 그동안 중소형 M&A와 투자에 대해선 발표조차 하지 않았던 전례를 비쳐보면 사실상 '빅딜', 즉 대규모 투자란 인식을 대내외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약 5000억원 규모의 투자로 발표했으나 최근 들어 급등한 환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만 인수 당시 환율(약 1125원)을 적용한다면 한화로 약 4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 또한 엄밀히 따지면 삼성전자가 아닌 자회사 하만인터내셔널이 가진 달러 자산을 기초로 한 거래다.

    5000억원 수준의 M&A는 미국 시장에선 미들급 거래 축에도 못낀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도 1조원 미만의 거래는 한해 M&A 거래 규모 기준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때는 글로벌 반도체 1위 기업이자 시가총액 330조원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빅딜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엔 사실상 민망한 수준. 그러나보니 M&A의 발표 직후 주식시장에 미친 영향도 전혀 없었다.

    이번 거래와 관련해 하만 측에 재무·전략 자문을 제공한 자문사는 공개되지 않았다. 거래규모가 작아 선정하지 않았던 탓인지, 자문사 공개를 극도로 꺼려하는 삼성의 오래된 이력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마시모는 센터뷰파트너스(Centerview Partners LLC)와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 Co. LLC)가 재무자문을, 설리반앤크롬웰(Sullivan & Cromwell LLP)이 법률자문을 담당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양측의 거래 계약서에 따르면 하만 측 법률자문은 시들리오스틴(Sidley Austin LLP)이 담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들리오스틴은 한국에선 정부와 론스타의 국제투자자분쟁(ISDS)에서 론스타 측 법률대리를 맡은 로펌으로 잘 알려져있다.

    국내외 투자은행(IB)들에 삼성그룹은 실제로 거래를 수임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든 '촉'을 세우고 있어야하는 중요한 고객이다. M&A, 블록딜을 비롯한 삼성그룹이 발표하는 깜짝 거래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민망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삼성그룹과 꾸준히 연을 이어가는 자문사들이 상당히 많다. 자칫 글로벌 헤드쿼터에서 한국을 방문하기라도 한다면 세계적 기업인 삼성의 주요 인사와 자리 정도는 마련해야 한국지사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다는 현실적인 배경도 있다.

    외국계IB들은 삼성그룹발(發) 해외 거래(크로스보더 딜) 물색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성사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규모 M&A 소식은 없고 제안하는 거래들은 삼성 내부에서 번번이 가로막히는 상황에서, 정작 이번 사운드유나이티드 인수와 같은 거래엔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이에 IB업계의 원성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 거래는 구(舊) 전장사업팀이었던 하만협력팀을 이끄는 윤준오 부사장(팀장)이 일부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가 직접 거래 상대방을 물색했는지, 반대로 하만 측의 제안이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만과 마시모는 지난해 9월 3일 비밀유지계약(Confidentiality Agreement)을 맺고 거래를 진행해왔다. 당시엔 하만의 4명 이사진 가운데 3명이 삼성전자 출신이었다. 손영권 전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 박학규 사업지원TF 사장, 안중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 등이었다. 현재는 박학규 사장의 하만 이사회 자리를 박순철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이 물려받았다.

    결국 과거 하만 인수의 주역이었던 손영권 하만 이사회 의장, 안중현 경영지원실 사장을 비롯해 현직 삼성전자 CFO이자 경영지원실장인 박순철 부사장 등이 이번 인수에 주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란 평가다. 안중현 사장과 박순철 부사장 모두 과거 미래전략실과 사업지원TF를 거쳤고, 현재 경영지원실에 소속돼 있단 공통점이 있다.

    삼성의 최고 브레인들이 8년만에 부랴부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오히려 외부 투자자들이 삼성을 더욱 냉정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 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것 역시 미래전략실, 사업지원TF, 경영지원실 등 컨트롤타워에 몸담은 일부 인사들의 치적을 내세우기 위한 작업으로 비쳐지며 민망하단 평가도 나온다.

    이번 거래는 삼성의 '빅딜 DNA'를 깨웠다고 보긴 어렵고, 그렇다고 하만 산하의 오디오 사업이 미래의 삼성을 책임질 중심축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갖기 힘들다. 어찌보면 삼성그룹 경영진들이 생각하는 빅딜의 수준이 딱 이정도 수준에 불과하단 것을 증명한 거래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