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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항공의 지배회사 한진칼이 자사주를 복지기금에 출연하며 의결권을 되살리는 결정을 내렸다. LS그룹은 행동주의 펀드와의 접점을 조용히 넓히는 모양새다. 자본시장은 담담하지만, 물밑에선 이들 그룹이 느슨했던 지분 방어 태세를 취하는 분위기다. 그 배경엔 호반그룹이 있다.
호반은 최근 한진칼 지분 1.02%를 추가 매입하면서 보유 지분율을 18.46%까지 끌어올렸다. 불과 한 주 전 호반이 LS그룹 지주사인 ㈜LS의 지분 약 3%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였다. 호반 측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은 이를 '조용한 신호'로 읽는 분위기다.
한진칼의 경우 조원태 회장 측이 약 2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델타항공(14.90%)과 산업은행(10.58%) 등 우호 세력과 연합을 고려하면 경영권은 안정적인 편이다. 그러나 호반의 지분이 빠르게 늘어나자 단기 주가가 급등했고, 시장은 전략적 접근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LS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구자은 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30%를 넘기지만, 3세 경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대외변수에 민감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호반의 연쇄 매입이 이어지자 LS는 행동주의펀드와의 교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KCGI도 조용히 포지션을 바꾸고 있다. 한진칼 사태 당시 적대적 M&A를 시도하며 이름을 알렸던 KCGI는 최근 교직원공제회 블라인드펀드의 위탁 운용사로 선정됐다. 펀딩 과정에서 경영권 관여 배제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LS그룹과의 후속 투자 논의도 조용히 이어지는 중이다.
앞서 KCGI는 올해 초 교공과 함께 LS 북미 계열사인 에식스솔루션즈에 공동 투자한 바 있다. 최근에도 교공·LS 측과 유사한 논의가 재개되며, 양측의 접점은 더 넓어졌다는 평가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장남인 정준택 KCGI 부대표가 LS와 KCGI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선 KCGI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은 공격적 투자자라기보다는, 기존 대주주 측 논리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조력자에 가까운 움직임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LS그룹의 불확실성이 부각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파트너로의 전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진칼은 이달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자사주 0.66%를 사내복지기금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지만, 복지기금에 귀속되면 의결권이 부활한다. 조 회장 측과 호반 간 지분 격차는 1.7%포인트였지만, 이번 조치로 약 2.3%포인트로 다시 벌어지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3월부터 계획된 사안"이라는 설명이 붙지만, 타이밍은 정교했다. 같은 시기 대한항공은 한진칼 2대 주주인 델타항공과 함께 캐나다 웨스트젯 항공사에 합작법인(JV) 형태로 지분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조 회장 측이 우군인 델타와의 연대를 공고히 하며, 외부 견제를 선제 차단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여기에 한진그룹과 LS그룹 간 연대 신호도 더해졌다. 이달 16일 LS는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대상 주식은 ㈜LS 보통주 38만7365주로, 지분율 1.2% 수준이다. 표면금리는 0%, 만기금리는 2.0%다. LS는 이번 자금으로 만기가 다가온 산업은행 차입금 약 1000억원을 상환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이 LS의 유동성 대응에 힘을 보탠 구조로, 재계에선 지분 경쟁을 앞두고 양사 간 전략적 연대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공단도 최근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5.05%)과 ㈜LS(12.67%)의 주요 주주다. 복수의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민연금 실무진은 최근 일부 증권사 애널리스트 및 기관 관계자들과 비공식 접촉을 갖고, 호반의 행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공유하며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산은은 한진칼, HMM, ㈜LS 등 호반이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의 주요 주주다.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산은 내부에선 "호반 측이 어떤 의도로 접근했는지 전혀 설명이 없었다"며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산은이 투자자로 참여한 기업이 예고 없이 지분 경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는 셈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호반 측은 투자 목적이라는 설명 외에 구체적인 전략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주요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예민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산은, 연기금, 사모펀드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각자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호반, 한진칼 이어 LS 지분도 매집 행보
양대 그룹, 의결권 방어 수단 가동 중
국민연금·산은도 대응 방안 탐색 돌입
시장선 행동주의 펀드 등판 가능성 주목
양대 그룹, 의결권 방어 수단 가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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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