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사 책임준공 첫 손해배상 판결 임박…새마을금고 등 대주단 ‘촉각’
입력 25.05.21 07:00
신탁사 책임준공 미이행 첫 손해배상 판결 임박
260억원 규모 안성 물류센터 사건, 업계 기준점 될 듯
판결 결과 따라 신탁사 재무 부담·신용도 직격 가능성
  • 이달 말 신탁사의 책임준공 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범위를 규정하는 첫 법원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다. 이번 판결은 신탁사들이 부담해야 할 배상액 규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가늠자가 될 예정이어서 신탁업계와 대주단 모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30일 서울중앙지법은 23개 새마을금고가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해당 사건은 경기도 안성시 물류센터 건설사업과 관련된 것으로, 신한자산신탁은 당초 2024년 3월까지 준공을 완료해야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이에 대주단을 구성한 새마을금고들은 약 26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신탁사의 책임준공 미이행으로 인한 소송은 이번이 최초는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이 변론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면서 가장 먼저 판결이 선고되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배상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대주단은 "책임준공 기한을 준수하지 못했으므로 대출 원리금 전액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신탁사 측은 "실질적으로 발생한 손실에 한해서만 배상 책임이 있다"는 입장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신탁사 측은 준공이 지연됐더라도 최종적으로 완공되어 매각이 이루어진다면, 이를 통해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다며 매각 대금이 부족할 경우 그 차액만 보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한 책임준공 의무가 사실상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장치로 작용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투자자 손실보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자본시장법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어 계약서 조항의 효력이 무효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주단은 준공 기한이 초과된 시점부터 계약상 책임이 발생하므로 원리금 전액을 상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책임준공을 둘러싼 양측 입장차가 커 현재로선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유사한 판례가 없어 이번 판결은 향후 관련 분쟁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법원이 대주단의 손을 들어줄 경우, 책임준공형 신탁사업을 확대해온 금융지주계열 신탁사들은 적잖은 재정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자기자본 수천억 원대 신탁사들이 수조 원 규모의 책임준공 사업을 운영 중인 상황에서, 배상 판결이 대규모 충당금 적립과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신용평가업계에서는 원리금 전액 배상 판결이 나오면 해당 신탁사들을 신용등급 감시대상에 올릴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책임준공형 신탁사업은 2015년 처음 도입된 이후 빠르게 확산됐다. 이는 신탁사가 시공 능력이 미흡한 중소건설사를 대신해 대주단에 준공을 보장하는 구조로, 준공이 지연되거나 실패할 경우 신탁사가 그 손실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대개의 계약에는 원리금 보상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입 초기에는 시장 상황이 호조를 보였던 탓에 책임 미이행 사례는 전무했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는 책임준공형 신탁사업에서 단 한 건의 소송도 발생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2023년부터 공사비 급등과 건설사 파산 사례가 증가하면서, 신탁사가 실제로 공사를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신한자산신탁 외에도 KB부동산신탁(5건·508억원), 코리아신탁(1건·40억원), 우리자산신탁(1건·5억원), 교보자산신탁(1건·5억원) 등 주요 신탁사들이 유사한 소송에 연루돼 있다. 현재 책임준공 관련 손해배상 소송은 총 13건, 청구액은 약 3454억원에 달한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아직 1심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결과에 따라 대주단과 신탁업계의 희비가 크게 엇갈릴 것"이라며 "원리금 배상에 무게를 두는 판결이 나온다면 더 많은 대주단이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반면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면 신탁업계의 부담이 한결 덜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