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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권 후순위채 발행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최근 롯데손해보험이 국내 금융사 중 처음으로 후순위채 콜옵션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행히 파급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보험사 재정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평가가 엄중해질 전망이다.
규제 및 시장 상황이 변하며 보험사도 과거보다 후순위채 발행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보험사 후순위채는 이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줘야 발행이 가능해질 거란 지적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 역시 건전성 규제 기준을 완화하고, 후순위채 등 자본성 증권을 제외한 '기본자본' 기준을 경영실태평가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보험사 자본성증권 발행액은 4조725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던 작년 연간 발행 규모(8조6550억원)에 절반 이상 가까이 다가섰다. 보험사에게 자본성증권은 부채 형태를 띈 자본이다. 고금리를 감수하더라도 너도나도 발행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채를 자본으로 인식해주는 만큼 금융당국의 관리가 까다롭다. 대표적으로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건전성 기준(킥스 비율 150%)을 충족하고,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규제가 있다.
롯데손해보험이 불문율이었던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에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롯데손보는 지난 7일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에 나설 계획이었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킥스 비율이 발목을 잡았다.
롯데손보의 킥스 비율은 작년 말 기준 154.5%로, 3월 말 기준으론 이보다 하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은 롯데손보가 콜옵션을 진행할 경우 킥스 비율이 권고 기준인 150%를 한참 밑돌 것으로 보고 콜옵션을 승인하지 않았다.
롯데손보는 감독당국의 판단에도 콜옵션 행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무산됐다. 롯데손보측은 "실패가 아니라 연기"라는 입장이지만, 투자자들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못해 사실상 상환 일정이 밀렸기 때문에 실패라고 인식하고 있다.
보험사의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가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2년 흥국생명이 5억달러(한화 약 66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나 금융위원회가 이를 저지하며 결국 콜옵션을 행사했다. 해당 채권이 외화채권인 탓에 국제적 신용도 타격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위는 "조기 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영향과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 상황 및 해외 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며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하고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롯데손보를 제외하고 올해 보험사 5곳이 총 5900억원어치의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를 앞두고 있다. 가장 먼저 푸본현대생명이 150억원 규모를 조기상환할 예정이다. 이어 흥국화재(7월, 400억원)와 신한라이프(8월, 3000억원) 콜 기한이 다가온다.
푸본현대생명의 킥스 비율은 작년말 기준 157.3%(경과조치 후)다. 시장 예상대로 3월말 기준 킥스 비율이 150%를 상회한다면 콜옵션 행사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흥국화재와 신한라이프의 킥스 비율은 각각 1분기말 기준 216.7%, 188.3%로 당국의 조기상환 기준을 충족한다.
3분기부터는 후순위채 콜 및 만기가 돌아오는 보험사들의 숨통이 '일단은' 트일 전망이다. 당국은 3분기 중 후순위채 콜옵션 등의 기준이 되는 킥스 비율을 기존 150%에서 130%로 낮출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가 킥스 비율 확충을 위해 후순위채를 발행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더욱이 당국은 보험사의 건전성 평가 지표에 '기본자본 킥스 비율'을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기본자본 킥스 비율은 경영실태평가에서 하위항목으로만 활용되는데, 이를 적기시정조치 요건 등 의무 준수기준으로 삼을 방침이다. 공시 의무도 생긴다. 후순위채 등 보완자본을 무리하게 발행해 킥스 비율을 끌어올리는 관행을 막기 위한 조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킥스 비율 규제가 완화되면 웬만한 회사들은 건전성 문제에서 벗어나게 된다"며 "기본자본비율 규제가 도입될 때까지 후순위채 등 이자 비용을 줄이고 이익잉여금 확보를 위한 수익성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수익 기반이 미약한 일부 중소형 보험사의 경우, 앞으로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며 양극화 현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롯데손보 사태 이후 롯데손보는 물론, 푸본현대생명, KDB생명 등 중소형 보험사들의 후순위채 유통 금리가 일제히 급등했다. 이달 초만 해도 거래금리가 민간채권평가사 평균금리(민평금리) 안팎에서 정해졌지만, 롯데손보 사태 이후엔 회사ㆍ회차별로 적게는 30bp(0.3%포인트)에서 90bp(0.9%포인트)까지 거래 금리가 상승한 것이다. 채권 시장에서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한다.
킥스 비율이 규제 비율에 근접하는 중소형사의 경우 향후 발행 건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리스크 프리미엄'을 부담할 수밖에 없을 거란 분석이 우세하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콜옵션 미행사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규제 변화와 가격 상승으로 보험사의 자본성증권 발행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라면서도 "대주주로부터의 자본 확충이 어렵고, 수익성도 좋지 않은 일부 중소형사는 오히려 자본적정성 관리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킥스 비율 끌어올리려 후순위채 발행했지만
결국 건전성 악화해 콜옵션 행사 어려워져
제도 변화 예고…보완자본 대신 '수익성' 집중
결국 건전성 악화해 콜옵션 행사 어려워져
제도 변화 예고…보완자본 대신 '수익성' 집중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