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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번 인적분할은 위탁생산과 개발 부문을 따로 떼어내 각기 경쟁력을 키우는 게 핵심이다. 존속 CDMO의 고객사 유치에 걸림돌을 제거하는 동시에 신설 삼성바이오에피스홀딩스(가칭)는 신약 개발부터 인수합병(M&A)까지 저변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사업적 목적의 개편 작업이지만 신설 지주사의 실질 자금력을 감안하면 향후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계획과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는 평이 나온다. 준비 중인 바이오 분야 M&A나 성장 로드맵에서 신설 지주사가 주체가 되려면 결국 모회사인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지원에 나서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투자업계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번 인적분할은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할독립설의 바이오 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객사 대신 의약품을 생산하는 CDMO(위탁개발·생산)가 바이오시밀러, 신약 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보유하는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는 작업이다. 분할이 완료되면 '고객과 경쟁할 수 있는' 이해상충 논란에서 자유로워진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 10년 전부터 고민하던 문제였다. 초기엔 홀딩스(지주사)를 설립해 아래에 로직스와 에피스를 병렬시키는 방안이 고려됐지만 확실하게 양사를 분리, 독립시키기 위해서 현재 구조를 짠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룹 지배구조 개편보다는 바이오 부문 경영전략상 필요에 의한 작업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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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 이후 신설 지주사 아래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기술유출 우려 없이 신약 개발에 나설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관련 인력을 확보해 신약 개발 작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룹 신수종 사업으로 바이오를 키워낸 고한승 전 사장은 지난 연말 인사를 통해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모두 신설 지주사를 중심으로 그룹 바이오 먹거리를 크게 늘리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CDMO는 제조·생산 영역이라 혁신성이 부족하고, 에피스도 저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다 보니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수익성을 기대하긴 어렵다"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위탁개발(CDO)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만큼, 그룹 차원에서 신설 법인을 통해 혁신 기술을 찾고, 실질적인 바이오 역량을 키워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자체 현금흐름으로 신약 개발과 같은 초장기 연구개발(R&D)과 글로벌 M&A를 치를 수 있느냐 하는 과제가 추가된다. 삼성그룹의 바이오 사업에서 실질 캐시카우는 존속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DMO 사업이다. 생산과 개발을 따로 떼어내는 순간 신설 지주사가 CDMO의 현금흐름에 기대기 어려워지는 구조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연결기준 유동자산은 약 1조9200억원, 이 중 현금성자산은 850억원 수준이다. 작년 한 해 매출액은 1조5000억원, 당기순이익이 3719억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개별기준 분기 실적과 비슷하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3조3500억원 수준의 자산이 신설 지주사로 향하지만 지적재산권 등 무형자산 비중이 높은 바이오 사업 특성을 감안하면 적극적으로 사업을 키울 형편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한 몸이던 시절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금 동원력이 떨어져 M&A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말이 많았다.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지원에 나섰던 거래에서도 가격 문제로 고배를 마신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모회사가 자금 지원에 나서주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평이 뒤따랐는데, 분할하면 이런 구조적 한계가 더 강해지게 된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선 성격이 다른 둘을 나눠주는 게 좋겠지만, 이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M&A나 신약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가 중요해졌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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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분할 이후 삼성그룹에서 어떤 카드를 준비하고 있느냐로 시선이 몰린다.
신설 지주사로 바이오 사업을 키우는 밑그림은 그려졌고, 이를 위해 자본 수혈이 필요하다면 결국 최대주주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배구조가 종전과 달라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분할 이후 존속, 신설 법인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는 만큼 선택지가 늘어나게 된 상황이기도 하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바이오 사업을 공동 지배하는 구조 대신 어느 한쪽으로 몰아주는 방안이 자주 오르내렸는데, 둘로 나뉘면서 선택지 자체는 늘어난 게 맞는다"라며 "현금이 풍부한 삼성전자가 신설 지주사의 사업 확장을 지원하되 그 성과가 삼성물산 가치를 밀어올리는 식이 되게 하는 등 여러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거론된다"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분할독립의 바이오 버전…10년 고민 끝에 인적분할
CDMO서 떼어내 신설지주 중심 신약개발·M&A 나서는 복안
원래도 자금력 약했는데…에피스에 막대한 현금 필요할 상황
밑그림 마련됐으나 결국 삼성물산·삼성전자 지원 필요한 구조
CDMO서 떼어내 신설지주 중심 신약개발·M&A 나서는 복안
원래도 자금력 약했는데…에피스에 막대한 현금 필요할 상황
밑그림 마련됐으나 결국 삼성물산·삼성전자 지원 필요한 구조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22일 15:2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