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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인적분할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탁생산과 개발이 한 지붕 아래 있기로는 삼성전자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도 마찬가지인데, 현실적으로는 파운드리가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거의 소진해버린 것 아니냐는 진단이 늘고 있어서다.
1분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직전 분기보다 역성장했다. 회사는 계절적 수요 약세와 고객사 재고 조정 문제로 매출액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1분기 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 연말보다 떨어졌을 개연성이 높은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작년 4분기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시장점유율을 8.1%로 집계했다. 파운드리 투자를 본격화한 5년 전보다 10%포인트 떨어진 상태다.
반대로 같은 기간 TSMC의 매출액은 늘어났다. 미국이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까 걱정한 고객사들의 선주문이 쏠린 덕이다. 지난 4분기 시장점유율은 67.1%를 기록했고 이제 70%대 점유율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한자릿수 점유율에서 캡티브(내부 매출)를 발라내고 나면 사실상 TSMC가 시장 전체를 집어삼킨 형국으로 풀이된다. 점유율 격차를 논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TSMC의 대안이 맞다면 같은 이유로 주문이 몰렸어야 한다. 실제로는 유의미한 고객사 수주도 없고, 주문이 없어서 공장을 세워둬야 하는 상황으로 전해진다"라며 "국내 P4, P5나 미국에 짓고 있는 텍사스 테일러팹 투자 속도를 자꾸 늦추는 것도 같은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인적분할할 수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CDMO가 우수한 캐시카우인 데다 바이오시밀러를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도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위탁생산과 개발을 떼어내도 각기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 없이는 신설 지주사에 신약 개발이나 인수합병(M&A) 역할을 부여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CDMO 없이 자체 현금흐름만으로 사업을 키울 수 없으니 결국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가 신설 지주사에 자금을 내려줘야 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중이다.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은 수년째 적자 상태다.
분석가마다 추정치는 다르지만 팹리스인 시스템LSI와 합쳐서 매 분기 2조원 안팎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비메모리 사업부 전체로 작년 적자가 5조원 규모였는데, 올해 적자폭은 7조원대로 늘어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내년에는 26조원이 투입된 미국 테일러팹 가동도 예정돼 있다. 해당 팹은 초미세 선단공정 파운드리인데 확실한 매출기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감가상각비 문제로 적자폭은 여기서 더 불어날 수 있다.
이만한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서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2020년 이후 매년 불어난 파운드리의 설비투자(CAPEX)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글로벌 전체로 봐도 삼성전자만이 감당할 수 있었던 사업 구조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 수년 동안 메모리가 매해 벌어들인 수십조원의 순이익 상당 부분이 파운드리 지원으로 흘러들어갔다. 업계에선 그간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CAPEX, R&D에 투입한 자금이 9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이오를 분할하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파운드리의 막대한 적자와 추가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짜야 하는데, 마땅한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다.
당초 삼성그룹에선 신설 지주사(홀딩스) 아래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병렬로 두는 구조도 고려했었다. 그러나 CDMO 고객사의 이해상충 우려를 불식시키는 목적이라면 현재처럼 인적분할하는 게 적합하다 보고 방향을 선회했다. 분할 이후 삼성바이오에피스는 CDMO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회사가 됐지만 여전히 모회사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됐다.
똑같은 방식으로 파운드리를 독립시킬 경우 삼성전자 자금력이 파운드리를 지원하는 통로도 끊어지게 된다. 반도체 산업이 기본적으로 업계 최상의 인재풀과 풍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굴러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운드리가 유의미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기 전에는 독립을 고려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인텔 역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을 추진했다가 위기에 빠진 상태다.
그렇다 보니 여전히 투자업계에선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분할해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등의 시나리오가 오르내리고 있다. 인텔과 함께 대만 TSMC의 유이한 대안이라는 포지션으로 미국 증시의 자금을 수혈받으면 어떻냐는 식이다. 그러나 작년 이후 삼성전자의 기술력은 물론 지배구조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의구심이 거세진 터라 이제는 이 역시 쉽지 않을 거란 우려가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나스닥 상장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이긴 하지만, 수십조를 쌓아놔도 실적이 없으면 현금은 금세 마른다. 지금은 삼성전자에 대한 기관 의구심이 너무 커지기도 했다"라며 "8인치 레거시도 아니고, 12인치 선단공정 파운드리는 원래가 천문학적인 영역이다. 인텔이 파운드리 독립한다면서 민관 가리지 않고 펀딩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당장은 작년 연말인사 이후 뒤바뀐 삼성전자 반도체 내부의 분위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평이다. 마침 TSMC는 파운드리 단가를 끌어올리고 있어 삼성전자가 영업에 나설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기대감도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지난 인사에서 과거 공정 전문가 대신 고객사와 밀접한 관계를 다져온 설계 기술자들을 파운드리 사업 전면에 배치시켰다.
적자 확대 속 파운드리 자립 의문…점유율 8%대 위축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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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5월 23일 19:2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