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카드' 될 수 있는 KAI, 매각 가능성 재점화
입력 25.05.28 07:00
취재노트
KAI 매각설에 대선 등 정치 변수 겹쳐
수출 실적 늘지만 중장기 수익 불안감도
"8조원대 밸류, 인수 메리트 있어야"
  •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둘러싼 매각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 25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는 모집액 대비 9배가 넘는 2조36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몰렸고, 이달 들어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되는 등 재무 지표에 일부 긍정적인 신호가 포착됐다. 다만 재무 안정성 자체가 개선됐다기보다는 구조적 한계와 함께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변수가 맞물리며 매각 논의에 다시 불이 붙는 모양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KAI는 올해 하반기 약 1800억원에서 최대 4000억원 규모의 추가 회사채 발행을 검토 중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한 조달이라기보다는, 내부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비한 "보험성 자금 확보 차원"이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올해 1분기 KAI는 연결 기준 매출 6993억원, 영업이익 46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5%, 2.5% 줄어든 수치로, 시장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보잉 파업 여파에 따른 공급 차질과 AI 파일럿, 무인기 등 신사업 개발비 부담이 실적에 영향을 미친 영향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KAI의 재무구조에 대한 우려를 명확히 드러냈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운전자본 부담 지속 ▲잉여현금흐름(FCF) 마이너스 ▲CAPEX 확대 ▲차입금 증가 등을 단기적인 부정적 요인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지난해 KAI는 KF-21 및 무인기 개발 등을 포함한 연간 5000억원 내외의 설비투자를 단행했으며, 운전자본 부담까지 겹치며 FCF는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총차입금은 1년 새 5000억원 이상 증가해 2024년 1분기 기준 2조2000억원에 달하며,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차입금 비율은 5.5배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 같은 실적·재무 불안과 맞물려 시장에서는 또다시 KAI의 민영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매각설의 중심에는 다시 한화그룹이 있다. 재계에 따르면 한화는 수년 전부터 KAI 인수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내부적으로 가동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23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해양 플랫폼을 확보한 데 이어, 항공까지 아우르는 육·해·공 방산 통합 시너지를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전체 분기 매출 중 해양(3조5000억원)과 방산(1조5500억원) 부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항공·우주 부문은 560억원에 그치며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KAI가 필요하다는 내부 판단은 있으나, 단일 사업군 편중 구조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다른 인수 후보인 HD현대는 약 2조원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항공우주 분야에 대한 기술력 및 사업 의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수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과거 대한항공을 통해 KAI 인수를 검토했던 한진그룹, 최근 K-방산 수출 호조에 힘입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LIG넥스원도 잠재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KAI 매각 논의의 핵심에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자리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방산 업계가 대선 공약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대형 기업에 대한 정책적 구조조정과 지원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재계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방산 산업 전반에 걸쳐 일종의 '선물' 성격을 지닌 사업재편이 추진될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전임 정부에서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매듭지은 선례처럼, 이번에도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매각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KAI의 사업 구조도 매각설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육상 무기체계의 국산화율이 85% 수준인 반면, KAI가 주력하는 항공기의 국산화율은 약 60%에 그친다. 상당수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구조로 인해 비용 부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원가경쟁력 저하로 직결된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보잉이나 록히드마틴처럼 미사일, 레이더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KAI는 항공기에 집중된 포트폴리오 구조라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리더십 안정성 문제도 여전하다. KAI는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이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사장 선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여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이 흔들리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장기 전략 수립과 실행의 일관성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KAI의 중장기 수주 실적은 꾸준히 증가세다. 올해 하반기에는 폴란드 2차 계약 물량 36대 납품이 시작되고, 2026년에는 KF-21 1차 계약분 20대 납품도 예정돼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중장기 수출 파이프라인 확대가 사업구조상 수익 안정성과는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선 관계자는 "새 임원진의 실적을 위해 KAI가 수주 기대감을 경쟁사 대비 실적에 빨리 반영시키다 보니, 수주 소식이 발표될 때 오히려 주가가 하락하는 사이클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지분 구조상 매각은 간단치 않다. 최대주주인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26.41% 지분은 단순한 투자자산이 아닌 자본성 자산으로 분류된다. BIS 비율 등 은행의 재무 건전성과 직접 연결되는 만큼, 정치권의 결단 없이 임의로 매각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KAI 노조의 강한 반발과 사천 지역사회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결국 KAI 매각설은 방산 업황 호조와 완제기 수출 확대라는 명분 위에,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정치적 수요가 겹쳐 재점화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자본 건전성, 지역사회 반발, 구조적 수익성 한계까지 맞물리며 단순한 매각 논의 이상의 셈법이 얽힌 셈이다.

    앞선 대기업 대관 관계자는 "KAI의 시가총액이 8조원을 넘지만, 아직까지 방산업계엔 우주항공 산업에 대한 메리트가 크게 없다"며 "비싼 밸류로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은 이를 '정치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