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부당지원·탈세 의혹…‘과거’ 파헤치는 당국에 재계 '긴장'
입력 25.05.29 07:00
취재노트
10년 전 일감·비자금 의혹까지 수면 위로
국세청 이어 공정위도 대기업 조사에 속도
  • SKT의 가공 용역 의혹부터 CJ 오너의 미신고 해외 계좌까지, 대기업의 과거 정황을 둘러싼 세무조사가 잇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과거' 정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추가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국세청과 공정위가 동시에 대기업 내부 거래 등에 칼을 빼들자 재계 전반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SK텔레콤(SKT)은 현재 10년 전 거래와 관련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2014~2015년 SK와 SK C&C가 SK주식회사로 합병되기 전, SKT는 SK C&C에 5000억원 이상의 일감을 발주했으며, 이 중 수백억원 규모가 가공 용역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SK C&C는 이를 근거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부가가치세를 공제받았으며, 국세청은 일부 세금계산서가 부풀려졌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SKT 본사에 조사관이 파견돼 현장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관련 내부 자료가 언론에 공개되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세청도 해당 자료와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조사는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이번처럼 구체적 정황이 공개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내부 자료 확보가 조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CJ그룹도 CJ제일제당 등 계열사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조사4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월 이재현 회장의 스위스 계좌가 포착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국세청은 이를 포함한 여러 사항들을 검토했으며, 당시 회장실 산하 전담 조직인 관제팀의 과거 자료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행 세법상 잔액 5억원 이상의 해외 금융계좌는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며, 미신고 시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간주돼 조세포탈죄 요건에 해당한다. 

    이 회장은 이미 2013년 6200억원 규모의 국내외 비자금을 운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 벌금 252억원을 선고받았다.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하고 회장실 내 전담 조직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과거 거래 추적에는 내부고발 자료가 활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국세청은 탈세 제보를 통해 확보한 증거로 추징한 세액의 5~20%를 포상금으로 지급하는 ‘탈세제보포상금 제도’를 운용 중이다. 포상 한도는 40억원이며,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이뤄진 세무조사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국세기본법 제26조의2에 따르면 국세의 일반적인 부과제척기간은 5년이다. 그러나 납세자가 허위계약서, 이중장부, 자료상 거래 등 부정한 방법으로 국세를 포탈하거나 환급·공제받은 경우에는 10년, 역외거래 관련 부정행위의 경우 15년으로 연장된다. 해당 기간은 과세당국이 해당 행위를 인지한 날부터 기산된다.

    한 조세전문 변호사는 “세무조사는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국세청이 사전에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밀 검증에 나서는 절차”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협조할 수밖에 없고, 통상 3개월 내외로 진행되며 협조가 부족할 경우 최대 1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사4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기업 오너 일가의 탈세 혐의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CJ, SK, 효성중공업은 물론 MBK파트너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KCGI 등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도 진행 중이다. 일부 PEF 내부에서는 고강도 조사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편 공정위도 대기업의 내부거래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하며 과거 사례를 재조명하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CJ와 CJ CGV가 계열사에 부당한 자금 지원을 했다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제재 의견이 담긴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이 보고서에는 CJ 법인에 대한 검찰 고발 의견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는 CJ가 2015년 계열사인 CJ푸드빌, CJ건설(현 CJ대한통운), 시뮬라인(CJ포디플렉스) 등의 전환사채(CB) 발행을 돕기 위해 CJ CGV와 함께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활용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TRS는 증권사 등이 투자자 대신 자산을 매입하는 파생금융상품으로, 부당지원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공정위는 설명 자료를 통해 이번 제재가 TRS 자체가 아닌 그 활용 방식에 대한 것임을 명확히 했다. 4월 발표한 ‘채무보증 탈법행위 고시’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파생상품으로 우회하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것으로,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6년 4월 24일부터 시행된다. 규제 대상 파생상품에는 TRS, 신용연계증권(CLN),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이 포함된다.

    공정위가 새 기준을 발표한 직후 CJ에 대한 제재 의견이 나와, 일부 언론에서는 소급 적용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공정위는 기존 공정거래법 제45조 제1항 제9호(부당지원행위 금지)에 근거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TRS 제재에 선례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2018년 효성그룹 사례를 언급하며 반박했다. 당시 효성은 TRS를 통해 사익편취를 시도한 혐의로 과징금 및 검찰 고발 조치를 받았으며, 이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공정위는 CJ 외 다른 대기업집단에서도 유사 사례를 점검 중이며,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CJ 사례는 공정위가 과거부터 보고 있던 건이라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지라도, 최근 새 기준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향후 관련 거래에 대한 감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