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암 치료제 신사업 첫발 뗐지만…쉽지 않을 빅파마 수주
입력 25.06.09 07:00
삼성바이오로직스, ADC CDMO 신사업 추진
글로벌 빅파마와 미팅…대규모 수주 총력
론자·우시 대비 경쟁력 입증하기가 관건
  •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신사업의 수주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경력'이 중요한 CDMO 사업의 특성상 글로벌 빅파마와 대규모 수주 계약을 체결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해당 분야에서 사실상 신생 업체이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잠재고객사인 글로벌 빅파마를 설득하려면 경쟁사보다 기술, 비용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동안 항체의약품 위탁생산(CMO)으로 쌓은 브랜드 가치를 활용해 글로벌 빅파마를 설득한다는 구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해외 기업과 수천억원 규모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고 연달아 공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럽 기업과 1억7555만달러(약 2420억원), 아시아 기업과 1억4403만달러(약 1985억원) 규모로 체결한 수주 계약들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초에도 미국 기업과 대규모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시한 올해 수주 계약 체결 규모는 3조원 이상이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달성한 수주 성과의 절반 이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5조원 이상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탄탄한 수주 흐름이 증명하듯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항체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을 궤도에 올렸다고 평가받는다. 삼성그룹의 지원 아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설비를 빠르게 확대한 덕분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설립 이후 인천 송도에 5개의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 능력은 78만리터 이상이다. 이는 CDMO 강자인 스위스의 론자와 유사한 수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장 증설을 예고한 만큼, 생산 능력 측면에선 더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달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신사업 CMO 수주 소식은 잠잠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항체-약물 접합체(ADC)를 신사업으로 낙점하고, CDMO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력 영역인 항체의약품처럼 글로벌 빅파마를 ADC CDMO 고객사로 유치하기 위해 시설 마련 전부터 미팅을 진행하는 등 성과 내기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DC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한 글로벌 빅파마를 잠재고객사로 볼 공산이 크다. 정형남 삼성바이오로직스 ADC개발팀장도 미국 FDA 허가를 받은 ADC 치료제를 언급하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ADC 신사업 분야에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ADC 치료제로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의 엔허투가 유명하다. 유방암 치료제로 많이 쓰이나, 점차 치료제로 쓸 수 있는 질환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매출도 고공행진이다. 제넨텍과 로슈의 케싸일라, 길리어드와 이뮤노메딕스의 트로델비도 잘 알려진 ADC 치료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성과를 내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먼저 ADC는 다른 암 치료제보다 구성 요소가 많고 독성이 강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기존에 성과를 올린 항체의약품보다 개발·제조·생산이 까다롭다. ADC를 개발하는 업체가 CMO 업체를 정한 뒤 바꾸기도 어려워, 잠재고객사가 쉽게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힘들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빅파마와 ADC CDMO 수주 미팅을 지속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라며 "항체의약품 CMO 사업으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올려놓은 덕분에 ADC로도 글로벌 빅파마와 미팅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하루빨리 수주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 ADC 완제의약품(DP) 설비가 없기도 하다. 의약품은 원료의약품(DS)을 완제의약품(DP)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DC 완제의약품 설비를 2년 뒤 마련할 계획이다. 잠재고객사 입장에선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생산을 맡겨야 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른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DC 구성 요소를 결합(컨쥬게이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완제의약품 설비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라면서 "경쟁사인 우시바이오로직스는 페이로드, 원료의약품, 완제의약품을 모두 생산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당장 계약을 체결하긴 다소 리스크가 있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일부 잠재고객사에 비용을 낮출 방안을 제시하며 설득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잠재고객사가 비용 측면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여러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잠재고객사 입장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선택하는 일이 ADC 경험이 없는 신생 업체를 선택하는 꼴이라, 이를 상쇄할 저렴한 비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위탁개발(CDO)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ADC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애를 먹을 것이란 우려를 내놨다. 론자와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경쟁사는 CDO 수요를 공략하며 ADC CDMO 시장에서 많은 고객사를 확보했다. 이 고객사가 결국 대규모 상업생산 고객사가 되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ADC 전용 시설을 마련한 이후 체결한 ADC CDO 계약도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와 맺은 것 정도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가 ADC 치료제를 개발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ADC 치료제에 쓰이는 항체 개발에 참여하는 형태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는 정형남 상무가 몸담았던 기업이기도 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항체의약품 CMO를 중심으로 성장한 회사라 ADC CDMO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론자와 우시바이오로직스 모두 CDO를 CMO로 이끈 경험이 있는 기업들"이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MO 중심의 회사라 다소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