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책' 휘말린 삼성생명…전자 지분 매각 '계산기' 두드리는 증권가
입력 25.06.10 07:00
이재명 정부, 소액주주 보호에 방점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 부상
증권사들은 수혜주로 삼성생명 주목
  • 삼성생명은 정말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고, 그 수익으로 배당을 늘릴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가 상법 개정, 보험업법 개정 등 소액주주 권익 강화와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삼성생명 주가가 출렁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생명이 전자 지분을 매각할 경우 확보할 수 있는 유동성과 자본효율 개선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배당 확대' 역시 전자 지분을 매각하면 된다는 논리다. 

    다만 삼성생명은 손사레를 치고 있다. 생명이 전자 지분을 매각하고, 물산이 이를 인수해 전자의 최대주주가 되는 '지배구조 개편'은 아직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9일 키움증권은 삼성생명이 보험업법 개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할 경우 10조 원 이상의 이익잉여금을 확보할 수 있다며, 목표주가를 기존 대비 14% 상향한 16만원으로 제시했다. 실제로 삼성생명 주가는 6월 초 이후 8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12만원을 돌파, 약 30% 이상 급등한 상태다.

    안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통주 8.51%(약 30조원)를 보유 중이며, 이는 과거 자본효율성 저하와 지배구조 불투명성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돼 왔다”며 “최근 상법 및 보험업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해당 지분의 처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소액주주 보호 및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강하게 천명한 바 있다. 실제로 대통령 취임 이후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가 붙고 있으며, 정치권에 따르면 오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처리 여부도 시장의 주요 관심사다.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평가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고,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가지 규제안이 엮이며 삼성생명의 주가 급등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삼성생명은 지난 1분기에도 킥스(K-ICS) 비율이 하락했다. 금리 하락기 대응 방안이 마땅치 않아 당분간 수익성 및 건전성에 보수적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밸류업' 국면에 주주환원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음에도 불구, 시원하게 주주환원책을 내놓지 못한 배경으로도 꼽힌다.

    만약 삼성생명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약 8.6% 수준으로, 취득원가는 약 5000억원, 현재 시가 기준으로는 약 28조원에 달한다. 만약 '삼성생명법'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18조원 규모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에 10조원 이상의 현금이 갑자기 생기게 되는 셈이다.

    '상법 개정안'은 이렇게 생긴 현금이 일반주주들에게 환원될 가능성을 높인다. 현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를 통해 일반주주들이 지지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진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울 전망이다. 이사회의 책무에 주주에 대한 의무를 명문화해, 주주들이 잉여 현금에 대한 배당 등을 요구하면 이를 거절하기 어려워질거란 논리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근 삼성생명 주가에는 삼성생명이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 현금화할 거란 기대감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 '밸류업' 랠리에서 소외된 삼성생명 일반주주들은 전자 지분 매각을 통한 조 단위 현금 유입을 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현실화 가능성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그룹 외부에 매각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삼성그룹의 삼성전자 지배력은 보통주 기준 20%에 불과한 까닭이다. 결국 현재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이 전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는 '여력'을 먼저 갖춰야 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여기서 주목받은 것이 삼성바이오 인적분할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담당할 삼성바이오에피스홀딩스를 인적분할한다고 발표했다. 로직스에서 에피스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삼성물산은 로직스 지분 4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분리신설되는 에피스홀딩스 지분 역시 43%를 보유하게 된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이 에피스홀딩스 지분을 2대 주주인 삼성전자(지분율 31%)나 외부에 매각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분리 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는 3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지분 일부만 매각해도 생명이 보유한 전자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셈이다. 

    물론 그룹 및 로직스는 "이번 기업 분할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포석이 아니다"라며 극구 부인하고 있다. 다만, 삼성생명법 및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하자 증권가에선 '이번 기회를 활용한 내부 자산 재배치가 현실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생명이 전자 지분을 물산에 매각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현실적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삼성물산이 생명이 보유한 전자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 자리에 오를 경우, 총 자산 대비 자회사 지분가치가 50%를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삼성물산은 '일반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된다.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지주회사법을 준수하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선 현 주가 기준으로 약 90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에피스홀딩스 지분을 전량 매각하더라도 조달이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분율을 늘리는 과정에서 차익 거래를 노리는 외부 사모펀드 등이 참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삼성전자 주가는 급등, 매수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주사 전환을 위한 유예기간을 최대 7년까지 확보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 그 사이 삼성전자에 대한 안정적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삼성생명측도 이 같은 전망을 근거로 "바이오 인적분할 및 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삼성생명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책 방향성이 대전환을 맞이하며 아직 불안정한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은 오랜 기간 삼성생명법에 대비해 내부 준비를 진행해 왔지만, 지배구조 개편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정부와의 정책 조율이 결정적”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어떤 방향의 기업 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향후 삼성 승계 구도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