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도 몰랐던 'SLL중앙 매각설'…중앙그룹 vs FI 갈등 예고?
입력 25.06.13 07:00
매각설에 지분율 28.5% 투자자들 "협의 없었다" 반발
내년 3월 상장 데드라인, IRR 달성하려면 2조원 밸류
콜앤드래그 없는 '관대한' 계약, 언론사 투자 특수성?
중앙그룹 전방위 압박 속 'FI 갈아끼우기' 시나리오 부상
텐센트가 쥔 협상 열쇠…회수 강행시 캐스팅보트 역할
  • 최근 자본시장에서 불거진 SLL중앙 매각설이 관련 당사자들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매각 주관사로 나서 콘텐트리중앙의 SLL중앙 경영권 지분(53.82%)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정작 핵심 이해관계자인 재무적투자자(FI)들은 "협의받은 바 없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회수 기한을 8개월 앞둔 상황에서 IPO 대신 매각 카드가 거론되면서, 각 이해관계자들의 상이한 입장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달 매각설이 불거진 직후 콘텐트리중앙은 조회공시를 통해 "소수지분 투자유치, IPO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적 대안에 대하여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매각설을 명확히 부인하지 않고 여러 옵션을 열어둔 셈이다.

    이에 FI인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는 중앙그룹 측에 즉각 연락을 취하는 등 강한 당혹감을 드러냈다. 프랙시스캐피탈은 지난 2021년 텐센트(지분율 10.11%)와 함께 SLL중앙에 총 4000억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Pre-IPO)를 단행한 바 있다.

    프랙시스캐피탈 측은 "골드만삭스는 소수지분 투자유치의 주관사"라고 반박했다. SLL중앙 경영진도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 않으며 투자유치를 추진 중"이라며 "IPO를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실제로 SLL중앙은 지난해부터 골드만삭스와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소수지분 투자유치 작업을 진행해왔다. 국내에선 원하는 밸류에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작비 상승으로 인한 운영자금 확보가 주목적이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SLL중앙이 당장 약 30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FI 교체보다는 신주 발행을 우선으로 접근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SLL중앙은 IPO 준비도 병행하고 있었다. 거래소 상장예비심사 신청서(ERA) 제출 시기를 놓고 회사 측과 FI들이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랙시스캐피탈 측은 "예심 신청이 한두 달 정도 지연되는 것은 FI와 콘텐트리중앙이 협의해서 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입장이었다.

    다만 매각설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일반적으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회사가 동시에 경영권 매각을 추진할 경우 거래소에서 상장 승인을 받기 어렵다. 상장 심사 과정에서 경영 지속성과 안정성을 중요하게 평가하는데, 매각 추진은 이런 요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혼란의 배경에는 '2026년 3월'이라는 피할 수 없는 데드라인에 있다. 2021년 FI 투자를 유치할 당시, SLL중앙은 3년 내 IPO를 약속했다. 당시 계약서에는 "3년 이내에 IPO를 완료해야 하며 기한 내 완료하지 못할 시 투자자에게 최소 연 2.9% 내부수익률을 실현할 수 있는 엑시트(Exit) 제안을 해야 하는 약정"이 명시됐다. 

    현재는 3년이 경과해 최대 연장 가능한 2년 중 1년이 연장된 상태다. 연 2.9% 복리로 계산하면 투자자들이 회수해야 할 금액은 약 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지금의 SLL중앙 상황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의 현재 지분율(28.47%) 및 후속 신주 발행 투자를 감안하면, 2조원에 가까운 밸류로 IPO하거나 매각돼야 목표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는 SLL중앙을 1조원 초중반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어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SLL중앙의 재무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4년 9월 기준 연결 부채비율은 172.9%로, 2022년 113.6%에서 급격히 악화됐다. 총차입금은 3772억원에 달하고, 이 중 단기차입금 비중이 68%를 차지해 유동성 부담도 크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2022년 602억원, 2023년 51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3년 연속 적자 상태다. '재벌집 막내아들', '범죄도시' 시리즈, '흑백요리사' 등 히트작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격적인 M&A로 인한 차입 부담과 제작비 상승이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 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4000억원을 투자한 FI들이 보유한 권리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사모펀드 투자에서 볼 수 있는 풋옵션(매도청구권)이나 태그얼롱(동반매각권) 같은 구속력 있는 권리가 없다. 주주간계약(SPA)에 의례적으로 넣는 경영권 변동에 대한 동의권이 전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관대한' 계약 조건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2021년은 콘텐츠 업계가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의 K-콘텐츠 투자가 급증하면서 제작사들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

    더 중요한 것은 SLL중앙이 중앙일보라는 메이저 언론사 계열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언론사 계열 투자에서는 정치적·사회적 고려사항 때문에 사모펀드가 강력한 회수 권리를 요구하기 어렵다. 특히 중앙일보처럼 국내 주요 언론사의 경우 옵션이 포함되면 향후 경영 개입 논란이나 언론 독립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맥쿼리펀드가 메가박스 매각을 추진했을 때도 제이콘텐트리(현 콘텐트리중앙)와 6개월간 법정 다툼을 벌인 바 있다. 당시 맥쿼리펀드는 홍콩 상사중재원에 중재신청까지 했지만, 결국 중앙그룹이 2600억원에 맥쿼리 지분을 인수하는 것으로 어렵게 마무리됐다. 글로벌 사모펀드조차 언론사 계열 투자에서는 원하는 조건으로 회수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런 구조적 한계 때문에 투자자들도 일반적인 사모펀드 투자보다 완화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중앙그룹은 전방위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JTBC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고, 메가박스중앙은 롯데시네마와의 합병을 통한 사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콘텐트리중앙의 현재 시가총액은 2500억원 수준으로, SLL중앙 문제 해결을 위한 자체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투자업계에서는 중앙그룹이 이런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SLL중앙 문제에 대해서도 선제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FI 교체'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신규 투자자가 기존 FI들의 구주를 매입하면서 동시에 신주에도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규 투자자가 기존 FI들의 구주를 매입하면서 동시에 신주에도 투자할 경우, 신규 투자자의 지분율이 콘텐트리중앙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런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기존 투자자들의 동의가 필수다. 

    프랙시스캐피탈은 선관주의 의무를 들어 헐값 매각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협상 과정이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1조원 초중반 밸류로는 투자자들의 목표 수익률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 내년 3월까지 약 8개월 남은 상황에서 IPO 성공이나 투자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SLL중앙은 기한 내 투자자들의 회수가 어려워질 경우 '엑시트위원회' 개최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상태다.

    협상 과정에서 텐센트의 역할이 주목된다. 프랙시스캐피탈과 달리 텐센트는 국내 언론사에 대한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어 협상에서 보다 실용적 접근을 할 가능성이 크다. 

    텐센트는 당초 K-콘텐츠 성장성과 글로벌 진출 시너지를 기대하며 투자에 나섰지만, SLL중앙의 부진한 실적과 OTT 시장 성장 둔화로 당초 기대와는 다른 결과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텐센트 측의 엑시트 의지가 상당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협상 과정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