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보수 환수제', '강제력' 부과될까...긴장감 맴도는 금융권
입력 25.06.17 07:00
새 정부, 금융기관 경영진 '보수 환수제' 공약
현행 '클로백'과 유사하지만 법적 강제성 부여 가능
기지급된 성과급 몰수 가능성까지 언급
  •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기관 경영진을 대상으로 '보수환수제' 도입을 예고하면서 금융권이 긴장하고 있다. 금융권 내부 규범인 '클로백' 제도보다 강력한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총선 당시 여당도 같은 내용의 공약을 내놓았던 점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은행·증권사·보험사 등 주요 금융기관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보수환수제 공약을 내놓음에 따라 내규를 점검하고 있다. 금융권은 클로백(claw back) 제도를 통해 비슷한 규범을 적용 중이지만, 이 대통령의 공약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서다.

    클로백 제도는 임직원이 기업에 손실을 입히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경우 성과급을 삭감하거나 환수하도록 한 제도다. 국내에선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 따라 금융회사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 손실 규모를 반영해 성과 보수를 재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금융기관 경영진을 대상으로 재무제표에 중대한 오류 등이 발견되면 일정 기간 보수를 환수하는 보수환수제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작년 4월 더불어민주당이 제 22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과 같은 내용이다.

    현재까지 공약이 입법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대통령 공약에 또 한번 등장하면서 당정이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민주당이 클로백 제도에 법적 강제력을 부과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며 "이미 민형사상 처벌이나 상장폐지 조건으로 경영진을 감시하고 있는 가운데 금전적인 손해까지도 강조하겠다는 측면"이라고 말했다.

    현행 클로백 제도는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적용하는 규범으로 강제력이 없다. 이렇다 보니 금융회사 내규는 대부분 보상위원회 등 관련 부서를 통해 손실 규모와 성과 회수 여부를 판단하도록 뭉뚱그려져 있다. 실제 클로백이 발생하더라도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의 감시가 불가능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융사고의 원인 및 담당자를 명확히 판단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클로백이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며 "한편으론 회사가 책임을 임직원 개인에 돌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 회사 입장에서는 클로백을 진행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일례로 BNK경남은행은 작년 3000억원 규모의 횡령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뒤 2021~2023년 재무제표에 손실을 나눠 반영했다. 이에 경남은행은 이 기간 지급된 임직원 성과급 중 일부를 환수하기로 결정했지만, 노조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다만 이 대통령의 공약은 임직원이 아닌 '경영진'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외에도 재무제표상 크고 작은 오류는 빈번하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3월 2019~2023년 사업보고서를 정정 공시했다. 외환거래이익을 잘못 산정해 영업수익이 5조7000억원 감소했다. 신한투자증권도 지난 4월 작년 반기보고서 등을 정정했는데, 이 결과 외환거래이익이 4500억원 감소했다.

    보수환수제가 실제 입법까지 이어질 경우 관건은 '퇴직한 경영진의 성과급 회수' 여부다. 클로백 제도가 현직 임원에 그칠 경우 금융사고나 중대한 손실이 수개월~수년의 시차를 두고 발견됐을 때 정작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클로백을 하더라도 임원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에야 이미 지급된 성과급 등에 대해서는 몰수하지 않는다"며 "임원 보수의 대부분이 장기 성과급인데 재무제표상 손실이 수년간 발생했다 하면 사실상 받은 보수를 다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보수 환수제가 법제화되더라도 현행 규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중대한 금융사고는 공시와 금융감독원 보고를 통해 이미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약에 굳이 재무제표를 언급한 건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주주권리 강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감원에 금융사고를 보고할 때 담당자에 대한 징계와 환수 조치 등도 함께 알리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법안이 나오더라도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