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플라즈마, 상장 시동…몸값 '2조' 거론 설득력있나
입력 25.06.23 07:00
높은 몸값 거론에 IB업계 '갸웃'
"현재 성장세로는 시장 설득하기 어려울 듯"
중복상장·구주매출 관련 우려 해소도 숙제
  • SK그룹의 혈액제제 기업 SK플라즈마가 기업공개(IPO)를 위해 상장주관사를 선정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SK플라즈마의 재무적투자자(FI)인 한앤컴퍼니가 상장 이후 구주 매출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플라즈마의 몸값은 최대 2조원까지 거론된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SK플라즈마가 몸값을 '조' 단위로 부풀릴 근거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SK플라즈마의 주력 사업인 혈액제제 사업 자체로 시장에 높은 몸값을 제시하기 어려운 데다, 신규 사업에선 별다른 성과를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K플라즈마가 SK케미칼로부터 물적분할한 회사라는 점도 중복상장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 상장에 다소 부담이란 의견이 나온다.

    IB업계에 따르면 SK플라즈마는 상장주관사를 선정하기 위해 최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한 여러 증권사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이들은 이달 초 SK플라즈마 측에 제안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레젠테이션(PT)은 이달 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들은 SK플라즈마가 IPO 주관사 선정 절차에 착수한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대어(大魚)급 기업이 사라지며 IPO 시장에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몸값으로 5조원 안팎이 거론된 DN솔루션즈는 올해 4월 상장을 철회했고,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비슷한 시기 상장을 추진하다 흥행을 위해 몸값을 절반 가까이 낮췄다.

    SK플라즈마는 최대 2조원의 몸값이 거론되는 만큼 시장의 관심이 쏠린 모습이다. 국내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SK플라즈마가 상장 시 높은 몸값을 내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IB업계에서는 SK플라즈마의 몸값으로 거론되는 '2조원'이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회사가 조 단위 몸값을 시장에 설득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SK플라즈마가 조 단위 몸값을 내걸면 시장에서 합리성을 찾는 데 애로 사항이 있을 것"이라며 "상장 당시 흥행한 SK그룹 내 다른 바이오 계열사가 연구개발(R&D) 경험을 내세운 것과 달리 SK플라즈마는 혈액제제가 주력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주력 사업인 혈액제제가 성장 측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신규 성장 엔진을 정당화해야 높은 몸값을 내걸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IB업계에서는 혈액제제 사업의 수익성이 낮다는 점, 그런데도 SK플라즈마가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장 시 거래배수(멀티플)는 30~40배 정도가 합리적이지 않겠냐는 의견도 내놨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SK플라즈마의 영업이익을 모두 순이익으로 보고 30~40배 멀티플을 적용해도 3000억~4000억원의 밸류"라며 "정말 조 단위 몸값을 제시하려면 멀티플이 몇백배인데 이는 설명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SK플라즈마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매출액 2078억원, 영업이익 117억원을 기록했다. 주력 사업은 혈액제제 제조 및 생산 사업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해 몇 년 사이 실적이 좋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혈액제제는 사람의 혈액을 뽑는 사업 특성상 수익성이 낮다. SK플라즈마도 3년 전까진 수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다. 국내 혈액제제 시장에선 경쟁업체인 GC녹십자보다 실적 측면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SK플라즈마는 해외 혈액제제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R&D 역량을 강화하는 신규 사업을 추진하며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행보를 보였다. 3~4년 전에는 투자금을 유치하며 혈액제제 기업에서 신약 개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바이오팜이 각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과 뇌전증 치료제로 성장성을 강조한 만큼, 일각에서는 SK플라즈마의 이런 행보를 상장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도 해석했다.

    하지만 SK플라즈마는 신약 개발 영역에서 아직 별다른 성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몇몇 바이오 기업과 협력 계약을 체결했지만, 투자금 유치 이후 혈액제제 사업의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SK플라즈마는 혈액제제 기업이지 신약 개발 기업은 아니다"라며 "SK㈜ 계열인 SK바이오팜이 신약을 잘하고 있으니 (SK디스커버리 쪽에서도) 업사이드를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복상장'도 SK플라즈마가 상장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SK플라즈마는 10년 전 물적분할을 통해 SK케미칼의 지분 100%로 설립된 기업이다. 새 정부가 주주 보호를 강조하고 있어 향후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질 점이 부담이라는 것이다. SK에너지로부터 물적분할한 SK엔무브도 강화된 주주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데 부담을 느껴 상장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가 SK플라즈마의 지분을 30% 가까이 들고 있는 점도 변수다. 한앤컴퍼니는 지난해 말 1500억원 정도를 투자해 SK플라즈마의 지분을 사들였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SK플라즈마는) 물적분할 된 회사이기도 하고,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FI로 있는 등 상장 전략을 짜기에 쉽지 않은 사례"라며 "주요 주주들이 원하는 몸값을 맞춰주기가 (상장 전략의) 관건"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