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못 하는데 물량만 쌓이네...'삼중고'에 멈춘 SPAC 시장
입력 25.06.24 07:00
상반기 스팩 신규 상장 3건 불과…3년 전 대비 90% 급감
PIPE 등 제도적 제약·M&A 역량 부족·시장 상황 등 한계
IPO 규제 강화에 '대안' 재부각…하반기 스팩 재시동 움직임
  • 올해 상반기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이 유례없는 침체를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신규 상장은 단 3건으로, 지난해(40건), 2023년(37건), 2022년(45건)과 비교해 큰 폭으로 줄었다. 중소형 기업의 우회상장 수단으로 각광받던 스팩시장이 단기간에 이처럼 얼어붙은 배경에는 제도·시장 수급·실무적 제약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쏟아졌던 스팩 물량 중 상당수가 아직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한 채 시장에 잔존하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등 금융당국이 지난해 '파두 사태' 등 금융사고 이후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스팩 합병 상장 심사도 강화하면서, 평균 6개월이던 심사 기간은 최대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스팩을 추진하려는 증권사와 발행 기업의 부담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스팩 합병 상장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2023년 이후 상장된 스팩 매물이 시장에 쌓인 상태"라며 "'기존에 상장된 스팩부터 정리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신규 스팩 상장 수요도 자연히 위축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팩 합병의 성공률은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주요 스팩 주관 증권사 10곳의 평균 합병 성공률은 약 55.9%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유안타증권은 8건의 스팩을 신규 상장시켰지만, 이 중 합병에 성공한 사례는 2건에 불과했다.

    업계에선 다수의 증권사들이 IPO 주관 실적 확대를 위해 스팩 상장에 집중해왔지만, 정작 합병 성사에 필요한 M&A 역량과 관련 경험이 부족해 양질의 스팩 딜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증권사들이 스팩을 신규 발행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실제로 인수합병을 성사시킬 수 있는 실무 역량이나 구조화 경험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며 "국내 자본시장은 IPO 중심으로 비정상적으로 크고, 인수합병 시장은 지나치게 왜소하다"고 말했다.

    특히 PIPE(Private Investment in Public Equity) 거래와 관련된 국내 규제가 스팩 합병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PIPE를 활용하면 인수 자금 조달이 유연해지지만, 거래소 정관 규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요구해 사실상 이를 가로막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PIPE는 상장회사가 특정 투자자를 대상으로 비공개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모 방식의 유상증자 구조다. 스팩 합병에서는 인수자금 마련 수단으로 활용되며, 거래 성사 가능성과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PIPE를 통한 자금 조달이 일반화돼 있으나, 국내에서는 거래소 규제 등으로 인해 사실상 봉쇄돼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합병이 원활히 이뤄지기 어렵고, 자연히 '잉여 스팩'이 시장에 쌓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 중소형 공모주 시장의 예외적 활황도 스팩 수요를 일부 잠식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통상 스팩은 직상장이 어려운 기업들이 선호하지만, 최근에는 중소형 기업 위주로 일반 IPO 흥행이 이어지면서 굳이 스팩을 택할 유인이 줄었다는 것이다.

    다만 하반기에는 스팩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다음 달부터 IPO 제도 개편안이 시행되면, 기관 투자자의 의무보유확약 비율이 상향 조정된다. 이에 따라 확약 부담을 꺼리는 일부 중소형 비상장 기업들이 스팩을 대안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스팩 상장은 일반적으로 수요예측과 확약 비율 부담이 없고,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비교적 간소한 절차로 상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최근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는 직상장 심사 기조 대비 유연한 경로로서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미래에셋증권은 하반기 중 신규 스팩 상장을 준비 중이며, DB금융투자 등 일부 중소형 증권사도 다음달부터 비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스팩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증권사 IPO 실무자는 "스팩 역시 일반 IPO와 마찬가지로 시장 흐름이 중요하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어, 하반기엔 신규 스팩 상장이나 합병 등이 상반기보다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