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시장 흔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실상 내수부양용 카드?
입력 25.06.27 07:00
코인 곁눈질
법적 정의나 규제 체계 없어…제도화 갈 길 멀어
"내수부양 위해 한국은행-정부간 정책적 합의 이뤄졌나"
국채 수요 지지…확장적 재정 정책 기조에 기여
제도 윤곽 드러나지 않았으나 관련주는 급등락
  •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제도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시장 구조적 문제 때문에 장기 성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따른 효용성을 기대했다기 보다는 '내수부양'이라는 경제적 목적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국채 등 실제 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디지털 자산을 말한다.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발행하며, 1개당 가격이 고정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 서클(USDC)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임박한 상황이다. 지난 17일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GENIUS)법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주된 내용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승인한 기관이나 기업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도록 하고 발행 잔액에 대해 현금, 국채, 은행 요구불예금 등의 준비자산을 최소 일대일의 비율로 유지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고객 자산 분리 보관 의무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국내에서는 당장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될 것 같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불가능하다. 아직 법적인 정의나 규제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발행 요건을 담은 여당의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올해 하반기에나 통과가 가능한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정책적 내수부양 의도가 더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신뢰성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은 환매 가능성을 비롯해 아비트리지(차익거래·arbitrage trading)가 가능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환매 구조가 불완전하고 글로벌 신뢰도가 낮다"며 "이제 시장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해 제도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며, 시장 구조적 문제 때문에 장기 성장성이 낮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도 "테더나 서클 같은 경우 글로벌 라이선스도 취득하면서 유통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치 재평가가 이뤄져 가격이 상승하고, 결제의 영역까지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같은 경우는 용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가치 평가가 내수시장에서만 이뤄지고, 결제 영역에서 많이 쓰일 데가 없으면 그냥 코인의 한 종류일 뿐이다"고 짚었다.

    또 현재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에서 발행자는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자본금은 5억원 이상으로 설정했다. 당초 논의됐던 자본금 규모인 50억원 보다 대폭 낮은 수준으로 은행이 아닌 핀테크 기업 등 민간 사업자에게도 발행 기회를 열어준 셈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 개설이 아직 막혀있고, 자기 발행 가상자산 매매 금지 조항이 있어 핀테크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증권사 연구원은 "정부 역시 현재 시스템상 한계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금융시스템을 건든다기보다는 내수부양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은행과 정부간 정책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했다.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국은행도 우려를 표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와 주요 은행장들은 은행부터 발행을 허용한 후 비은행까지 범위를 넓혀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민간 발행시 자본이동 경로가 복잡해져 원화 안정성과 환율 정책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발행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서는 특정 발행사 부도로 공포가 생겨 '코인런'이 발생할 경우 금융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경철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스테이블코인은 환급에 대응하기 위해 고유동성 자산인 현금이나 예금, 단기 국채를 자산으로 구성한다"며 "민간업체가 코인을 발행하면 예금이나 국채 운용과정에서 금융시장 충격에 따라 코인런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준비자산의 매각 등 서로의 리스크가 전이되면서 리스크 증폭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채 수요의 중심축으로 성장해 이재명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 기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김 신임 실장은 디지털자산 싱크탱크에 몸담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인물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 수요를 지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미국 단기채(티빌·T-Bill) 매수 주체 순위 중 미국 머니마켓펀드(MMF), 중국에 이어 스테이블코인이 세번째로 자리했다. 일대일 준비금 담보를 위한 단기채 수요가 늘어 재무부 발행 물량 소화에 도움이 된다. 미국 재무부 산하 차입자문위원회(TBAC)는 오는 2028년까지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들이 보유한 미국 단기채 규모가 2024년 대비 8.3배 증가한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채 수요가 늘어나면 조달 금리가 내려가고 적극적 재정정책이 가능해진다. 만일 한국 국채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활용할 경우 추가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국채 가격이나 시장금리 변동성 확대 등 또 다른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제도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련주는 폭등했다. 실제로 내수부양 효과가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가장 크게 주가가 치솟은 기업은 카카오페이다. 스테이블 코인 상표권을 출원하는 등 발행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카카오페이 주가는 이달(25일 종가 기준)에만 147.82% 폭등해 10만원을 넘보고 있다. 급기야 단기 급등으로 24일에 이어 이틀 만인 26일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돼 하루 동안 거래가 정지됐다. 같은 기간 한국은행 디지털화폐 사업의 기술총괄사인 LG CNS는 70.32% 치솟았으며, 네이버(98.92%), 미래에셋증권(97.72%) 등도 급등했다.

    단순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했던 만큼 낙폭도 크다. 26일 오전 기준 LG CNS(-14.27%), 미래에셋증권(-10.02%), 네이버(-8.82%) 등 매물이 출회되며 하락세로 전환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아이티센글로벌(-21.04%), 헥토파이낸셜(-18.94%), NHN KCP(-18.13%), 다날(-17.66%) 등이 하락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