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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긴축 살림을 이어가면서 자문사들도 일감을 따내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어쩌다 대기업 일감을 수임하더라도 난이도가 높거나 수수료율이 박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자문사 사이에선 '천수답' 대기업 일감을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거래를 기획하고 만들어내야 한다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M&A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삼성전자의 '귀환'이다. 5월 자회사 하만이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3억5000만달러 규모)를 인수했고, 얼마 후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HVAC) 기업 플랙트그룹(15억유로)을 인수해 조단위 거래도 성사시켰다. 추가로 매머드급 거래가 이뤄지느냐에 관심이 모아졌다.
자문사,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IB) 입장에선 삼성전자 일을 맡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상충상 자문을 맡기 어려운 경우라도 한국 내 최대 고객의 사정은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최근 삼성그룹은 M&A는 물론 바이오사업 재편, 자금 조달 등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며 시선을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의 상징성만큼 자문사가 실익을 챙기는지는 의문이다. 플랙트그룹 인수 자문사 씨티증권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수십억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수수료율이 1%를 한참 밑돈다. 그나마 삼성전자에서 자문료를 수억원 더 깎아달라 요구해 진땀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 자문사의 수수료는 10억원 안팎으로 언급된다.
자문 일감이 많지 않을 때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일을 받는 것은 감지덕지다. 그러나 한 프로젝트당 길게는 2~3년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일들은 수임 자체도 쉽지 않지만 막상 일을 맡으면 먹을 것이 많지 않은 '계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IB 관계자는 "삼성전자 관련 일은 보수가 짜서 수임하기 꺼려질 때가 많다"며 "삼성전자가 우월한 지위에서 수수료를 깎아달라 하면 IB로서도 외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삼성전자만의 일은 아니다. 시장에 거래는 뜸하고 실적에 목매는 자문사들은 많다. 대기업들은 굳이 거래 의향이 없어도 자문사들을 간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자문사에 시장 조사를 시키고, 자문사가 모셔온 원매자들을 놓고 주판알도 튀긴다. SK그룹처럼 자체 역량이 쌓인 곳은 IB 없이 거래를 한다.
간혹 대기업이 먼저 거래 의지를 보이며 IB를 찾기도 하지만 거래 대상을 미리 알려주지 않으니 득실 판단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혹은 자체적으로 원매자를 찾기 어려울 때 IB를 선임한다. 이 때는 쏠쏠한 성공보수를 기대할 만하지만 그만큼 거래의 난이도는 높아진다.
IB와 겹치는 영역이 많은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거래를 많이 해본 기업들은 상당한 역량을 내재화했기 때문에 외부 자문사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다. 여기에 긴축 경영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수수료율이 더 박해지는 추세다.
최근엔 인공지능(AI)까지 적극 도입되면서 자문사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단순 반복 업무 수행 부담은 줄었지만, 이는 거래 상대방도 똑같이 파악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AI를 활용해 실제 업무 시간이 줄었음에도 왜 이전 수준의 비용을 청구하느냐 지적할 만하다. '타임차지' 업무 관행이 흔들리고 있다.
대기업에서 나오는 거래만으로는 살림을 꾸리기 어려워지다 보니 자문사들은 보다 적극적인 영업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M&A 시장이 주춤한 가운데도 괄목할 성과를 내는 경우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작년 컴포즈커피 매각(4700억원)은 독립계 M&A 자문사 KR&파트너스가 자문했다. 수수료율은 3%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년간 고생한 점을 감안해도 후한 값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국계 IB와 대형 회계법인 사이에서 '우리도 이런 거래를 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퍼졌다는 후문이다.
작년 제네시스PE의 KJ환경 매각(1조원)을 성사시킨 삼정KPMG는 수수료로 80억원가량을 챙겼다. 역시 매도자로부터 2년 간의 업무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삼정KPMG는 애경산업 매각을 맡고 있는데 검토할 것이 많고 거래 난이도가 높은만큼 성사 시 KJ환경에 준하는 성공보수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각자 M&A센터 같은 조직을 만들어 '기획성' 거래를 발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먼저 거래를 만들어서 기업과 사모펀드(PEF) 등과 거래해야 노력에 걸맞는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뷰티, 방위산업, 전력기자재 등 영역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IB 관계자는 "이전처럼 대기업만 보고 있어서는 돈을 벌기 어렵다"며 "일찌감치 매도자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두거나 미리 기획해서 선점한 거래를 해야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자문 일감 줄고 수수료율도 낮아져
어쩌다 일감 생겨도 난이도 높아 실익 의문
삼성 M&A보다 중저가 커피 매각 보수 높아
끈끈한 네트워크-기획성 M&A 중요성 커져
어쩌다 일감 생겨도 난이도 높아 실익 의문
삼성 M&A보다 중저가 커피 매각 보수 높아
끈끈한 네트워크-기획성 M&A 중요성 커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7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