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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계열사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 거래가 종적을 감출 분위기다. 10여년 가까이 발행사엔 손쉬운 조달 창구로, 투자은행(IB)엔 풍부한 수수료 수익원으로 기능해왔지만 제도적으로 가로막힐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당분간 자본시장 전반이 FI들이 쥐고 있는 소수지분 정리 문제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분기 인수합병(M&A) 업계에선 SK엔무브 외에 롯데글로벌로지스, 카카오모빌리티, DN솔루션즈까지 FI들의 지분 문제가 계속해서 화두였다. 사업 내용이나 실적, 기업 가치는 제각각이나 모두 상장 모회사가 적격상장(Q-IPO)을 조건으로 자회사에 FI를 모셔온 곳들이다. 이중 롯데글로벌로지스와 SK엔무브는 그룹이나 모회사가 적정 수익률을 얹어 지분을 되사오는 식으로 FI 지분을 정리했다.
교보생명과 11번가 사태를 지켜본 시장이 CJ올리브영과 같은 출구전략으로 수렴하는 과정으로도 풀이된다. 회수 문제로 회사와 갈등이 깊어져서 좋을 게 없고, 투자자가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 등 권한을 행사해도 큰 효용이 없었다. 양측이 조율해 적당한 선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게 출혈을 최소화하는 중간지점으로 떠오른 셈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교보생명 FI들이 10년을 끌어서 손에 쥔 것도 불투명하고, 발행사들도 11번가처럼 회수 보장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평판 부담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라며 "간섭이 덜한 FI로 교체하려는 시도도 이어지지만 별 소득이 없는 분위기라 조기 상환 작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올 초 LG CNS가 IPO 막차를 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도적으로도 주주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대기업 그룹사에서 프리 IPO에 나서는 트렌드 자체가 저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새 정부 의중이라기엔 이미 3년 전부터 당국에서 제도적 보완을 예고해온 참이기도 하다. 당시는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처럼 물적분할 후 모자회사가 동시상장에 나서는 사례가 논란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후 상장사들이 자회사 지분을 공모시장에서 현금화하는 자체를 문제 삼는 시각이 점점 늘었다. 투자자 눈높이는 계속 올라가는데 그룹사 한 곳이 자회사, 손자회사 십여곳을 대동해 IPO를 추진하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화를 자초한 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지주사 행위 제한 규제에 따른 자회사, 손자회사 의무보유 지분 외 나머지는 그냥 공모시장에 내다 팔아도 되는 것처럼 국내 인식이 굳어졌는데, 프리 IPO가 그동안 대기업과 FI 사이 가교 역할을 해줬다"라며 "하나의 시장 안에 모자, 손자회사까지 줄줄이 상장된 게 글로벌 스탠더드랑 동떨어진 것도 사실이라 슬슬 막힐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가 벤치마킹한 일본의 경우 10년 이상에 걸쳐 중복상장 구조부터 해소한 뒤 증시 저평가 해소 정책을 펼친 것으로 확인된다. 국내에선 기업에 너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방식이라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앞으로 중복상장을 막는 것은 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대기업들은 물론 사모펀드(PEF) 운용사나 자문시장 전반에서도 아쉬운 목소리가 전해진다.
기업 입장에선 신사업을 키울 때 손쉽게 마중물을 댈 수 있는 창구가 사라지는 셈이다. 인수합병(M&A)이나 설비투자(CAPEX)로 진입장벽을 넘어야 하는데 공모시장에 손을 벌리기 어렵다면 결국 회사 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PE들은 그간 이 과정에서 소수지분을 적기 선점한 것만으로도 IPO를 통해 대규모 차익을 거둬왔는데 이 역시 막히게 됐다. 경영 참여 없이 기업 네트워킹이나 공모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수익을 내던 방식과 결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프리 IPO 전후로 자문, 인수, 주선 수수료를 거둬 온 IB나 회계·법무법인들도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다. 물론 FI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일감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거래 성격 자체가 성장보다는 뒷수습에 가깝다 보니 실속은 떨어지는 모양새다. 보유 자산을 매각하거나 유동화해 FI를 내보내야 하는 대기업들에 넉넉한 수수료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관계 정리 작업인 만큼 후속 거래를 수임할 가능성도 제한된다. 회사와 FI 간 눈높이 조율이 어려울 경우 품삯을 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IB들은 대기업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 위험부담이나 공임이 들어간 만큼 수익을 챙기기도 쉽지 않다"라며 "이미 정식 자문 계약 없이 거래를 치르는 경우도 많아졌고 기업들의 요구도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에 SK엔무브까지…늘어나는 FI 정리 작업
"중복상장 사실상 막힌다"…저무는 대기업 프리 IPO 트렌드
자문업계도 아쉽긴 마찬가지…일감, 수수료 수익원이었는데
FI 정리 과정 일감도 늘지만…난이도 비해 실속 있을까 걱정
"중복상장 사실상 막힌다"…저무는 대기업 프리 IPO 트렌드
자문업계도 아쉽긴 마찬가지…일감, 수수료 수익원이었는데
FI 정리 과정 일감도 늘지만…난이도 비해 실속 있을까 걱정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7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