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까지 온 'PF 정상화펀드'…회생 불능 사업장 수명만 연장?
입력 25.07.04 07:00
진성매각 논란 피하고자 선·후순위 구조
은행·보험업권 신디케이트론 자금 선순위로 투입
"업계 펀드로 손실을 막는 것…분명한 한계 존재"
  • 저축은행업권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사업장 정리를 위해 마련한 공동펀드가 어느덧 4차까지 이르렀다. 다만, PF 정상화펀드가 결국 망가진 사업장을 연명하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과 대주단, 운용사가 하나의 이해관계로 뭉쳐 있으며, 구성된 자산들이 착공 전인 브릿지론 사업장이거나 지방 사업장이 다수라 실제로 회생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설명이다.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PF 정상화펀드는 4차까지 자금 집행을 마쳤다. ▲지난해 1월 330억원 ▲6월 5000억원 ▲올해 3월 2000억원 ▲6월 1조2000억원 등의 순이다. 4차 펀드는 총 1조2000억원 규모로 그간 조성한 펀드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공동펀드 운용사도 KB자산운용,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바로자산운용, 웰컴자산운용, 푸른파트너스자산운용 등 총 5개사로 늘렸다.

    PF 정상화펀드는 조성 초기부터 진성매각 논란이 일었다. 당시 펀드를 일부 저축은행이 스스로 조성한 정상화펀드에 자신들의 PF 채권을 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수익자가 자신의 PF 자산을 펀드에 넘기기 때문에 운용 의사결정 권한이 온전히 자산운용사에 있다고 보기 어려워진다. 이런 경우 자본시장법상 불법인 OEM(주문자위탁생산) 펀드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진성매각 이슈를 피하기 위해 3차 정상화펀드부터는 선·후순위 구조로 펀드를 구성했다. 또 부실 사업장을 매각하는 저축은행들을 모두 섞어 후순위로 들어가게 하는 방식으로 구성해 문제 가능성을 없앴다. 선순위 투자자에는 외부 투자자(FI)를 포함시켜 진성매각과 관련된 이슈를 해소한다는 취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3차 정상화펀드도 투자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펀드 규모도 기존 목표액인 5000억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20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4차 정상화펀드에는 은행과 보험업권의 신디케이트론 자금이 선순위로 투입되며 가장 큰 규모로 펀드 조성을 마쳤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과 5개 보험사(한화생명·삼성생명·메리츠화재·삼성화재·DB손해보험)가 관련 업무협약(MOU)을 맺어 실제로 자금 투입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은행과 보험사에 도움을 주라고 압박이 내려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결국 선순위를 앞세워 담보를 잡아주고, 후순위로 들어간 저축은행 등이 손실을 흡수하는 구조가 된다. 30%의 비중을 차지하는 선순위는 높은 이율로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며, 후순위 입장에서는 이렇게 해서라도 만기를 연장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선순위는 사실상 무조건 엑시트가 가능하니까 펀드 운영에는 참견하지 않을 것"이라며 "후순위는 내 사업장 중 하나라도 살리면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PF 정상화펀드가 금융당국과 대주단, 운용사의 이해관계로 뭉쳐 있어 망가진 사업장을 연명하기 위한 구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부실사업장에 빠른 정리를 요구하고 있다. 대주단의 경우 부실채권이 발생하면 공매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고, 공매를 결심하더라도 후순위 채권자 또는 차주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관리보수와 성과보수를 수취할 수 있고, 향후 NPL 정리와 관련한 운용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손해볼 것 없는 장사다.

    앞의 관계자는 "이미 1차 정상화펀드 때부터 속칭 '망해도 금융당국에서 도와줄 거다' 'PF 시장은 대마불사다'라는 말이 파다했는데 정부의 '금융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개별 사업장이 아니라 PF 사업장들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구조가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남은 저축은행 사업장들이 실제로 회생가능성이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착공 전인 브릿지론 사업장이거나 지방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브릿지론 사업장은 인허가 전이거나 본 PF사업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 머물러 있어 사업 불확실성이 높다. 지방 사업장의 경우 부동산 수요가 적어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의 금융권 경공매PF 사업장 목록에 따르면 경공매 대상 사업장 수는 지난 5월 말 기준 355곳, 총 12조3476억원(감정평가액 기준)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저축은행 사업장은 총 3조897억원 규모로 25.02%를 차지했으며, 브릿지론 비중도 91%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관계자는 "브릿지론 단계에서부터 사업성이 낮아 애매하다고 질질 끌다가 금리가 오르면서 망가진 사업장이 대부분"이라며 "업계 펀드로 손실을 막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부실 사업장에 대한 신속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