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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애경산업 매각이 ‘제1호’로 영향을 받는 거래가 될지 주목된다. 개정안의 골자는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해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라는 문구를 추가한 것이다. 해당 개정안은 즉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 진행 중인 애경산업 매각에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해 처리한 첫 법안인 상법 개정안은 이달 3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이사에게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공포 즉시 시행되며, 기업들은 이르면 이달부터 개정된 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진행 중인 애경산업 매각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애경산업과 매각 주관사 삼정KPMG는 지난달 19일 인수 예비입찰을 마감했다. 최근 예비입찰 참여자 가운데 숏리스트(적격 예비 후보)를 추렸다. 숏리스트에는 앵커에쿼티파트너스, 티투PE 컨소시엄, 폴캐피탈코리아 등이 포함됐다.일본 라이온코퍼레이션은 최종적으로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매각 대상은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 등이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38%다. 매도자 측 희망가는 약 6000억~7000억원대 수준으로 전해진다. 인수의향서(LOI)를 낸 원매자 중 매도자의 눈높이를 맞춘 후보들이 숏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애경산업의 시가총액은 약 4300억원 수준이다. 따라서 매각가가 매도자가 원하는 6000억원 선에서 정해진다면, 해당 지분에 대한 경영권 프리미엄은 시장가격 대비 약 120%로, 원매자들은 시장가의 2.2배를 주고 매입하는 셈이다.
통상 국내에서 경영권을 포함한 상장사 지분 매각 거래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20~30% 정도가 평균 범위로 거론된다. 50%를 넘으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다만 경쟁 강도가 높거나, 독점 기술·브랜드 등 희소가치를 보유한 경우 더 높은 프리미엄이 붙기도 한다.
숏리스트에 오른 원매자들은 매도자 측 기대 가격에 부응한 곳들로 파악된다. 다만 현재 시장가격과 상당한 괴리가 있는 만큼, 소액주주들이 ‘형평성 논란’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거론되는 애경산업 매각가는 시장가격 대비 상당한 경영권 프리미엄이 적용된 수준으로, 대주주 이익만 고려되고 ‘전체 주주’가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했다는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나올 수 있다”며 “아직 본입찰 전이라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이고, 개정 상법이 딜 성사의 막판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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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PEF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경영권 인수를 추진 중인 롯데렌탈이 비슷한 사례다. 어피너티가 롯데 측으로부터 시장가격(신주 발행가)의 약 3배 수준으로 구주를 인수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지분 약 4%를 보유한 VIP자산운용이 주주행동에 나서, 유상증자가 어피너티 측에 유리하게 설계돼 일반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며 유상증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롯데렌탈 유상증자가 충실의무가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된 개정 상법의 첫 적용 사례가 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해당 거래는 아직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남아 있다.
상법 개정 기조가 이미 확산되면서 일부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였다. 지난달 국내 PEF 운용사 VIG파트너스는 미용 의료기기 기업 비올 인수 과정에서 공개매수를 추진하며, 공개매수 가격을 대주주 지분 인수가와 동일하게 책정했다. 소액주주에게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동일하게 제공한 것으로, 이는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소액주주 권리 보호’ 기조를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이런 분위기 속 애경산업 매도자와 원매자들은 각기 다른 전략으로 상법 변수에 대응하며 본입찰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계 PEF 앵커PE는 4호 블라인드펀드의 남은 드라이파우더 소진을 위해 이번 거래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앵커PE는 국내 투자 재개를 위해 여러 거래를 검토해왔으며, 이번 애경산업에 참여했다. 다만 앵커PE가 보유한 다수의 국내 포트폴리오가 부진한 만큼 애경산업 인수 후 관리 역량에 대한 의문의 시선도 있다.
태광그룹은 투자 전문 자회사 티투프라이빗에쿼티를 통해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참여했다. 다만 태광산업이 자사주를 기초로 한 교환사채(EB) 발행 후속 절차를 중단하면서, 애경산업 인수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태광산업이 EB 발행 대금 상당 부분을 티투PE가 조성하는 펀드에 출자해 애경산업 인수에 활용할 계획이었다는 시각에서다.
폴캐피탈코리아는 지난해 국내 라이선스를 취득한 국내 PEF 하우스로,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해외에서 자금 조달을 주력으로 하고 있으나, 아직 트랙레코드가 부족해 경영권 인수 후 단독으로 기업을 관리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있다.
즉시 시행된 상법 개정, 애경 매각 변수 부상
'전체 주주 공평 대우' 상법 첫 시험대 될까
'전체 주주 공평 대우' 상법 첫 시험대 될까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7월 04일 11:1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