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웨이브 합병 2년째 표류...KT-CJ '감정의 골' 때문?
입력 25.07.08 07:00
2023년 합병 논의를 위한 MOU 체결
6월 공정위 '임원겸임' 기업결합 승인
'법인 통합' 예상됐지만 움직임 없어
KT 입장에선 SK와 제휴 탐탁찮을 듯
웨이브엔 고객모집 및 보상 조건 없어
  •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TVING)과 콘텐츠웨이브(Wavve)의 합병 논의는 2023년부터 본격화했다. 그해 말 양사간 합병 논의를 위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후 협상 테이블이 차려졌다. 다만 두 회사의 주주구성이 판이했고, 서로 생각하는 몸값 차이도 컸던 터라 진행 속도는 더뎠다.

    작년 11월 CJ ENM과 티빙은 웨이브의 이사 8명 중 대표이사를 포함한 5명, 감사 1인을 자사의 임직원으로 지명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웨이브와 체결했다. 12월엔 공정거래위원회에 임의적 사전심사를 청구했다. '임원겸임' 방식의 기업결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토종 OTT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달 새 정부가 들어섰고, 공정위는 지난달 내년 말까지 현행 요금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티빙-웨이브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법인간 합병이 아님에도 경쟁제한성까지 따져 가며 당위성을 부여했다.

    CJ ENM 측은 "공정위 기업결합 승인 후 양사가 OTT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티빙과 웨이브 합병을 위한 법률적 검토는 끝났다. 작년 말 웨이브 주주인 지상파 3사가 합병에 동의하며 걸림돌도 많이 사라졌다. 새 정부나 공정위의 우호적인 기조를 감안하면 티빙과 웨이브의 법인간 합병 절차가 본격화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티빙과 웨이브는 임원겸임 방식 기업결합이 이뤄지면서 사실상 사업 통합이 이뤄졌다. 통합 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시너지 효과도 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단추인 '법인 합병'까지는 갈 길이 멀다. 티빙과 웨이브 모두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티빙과 웨이브의 사업은 사실상 통합 수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법인간 합병이 이뤄져야 한다. 양사 주주들이 합병에 동의해야 하는데 티빙 주주인 KT가 합병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까지 KT의 동의만 남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KT는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독점력이 낮은 웨이브와 합병하는 것이 티빙 주주에 득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뜻을 피력해 왔다. 아울러 OTT 통합 시 자사의 IPTV인 지니TV의 지배력이 약화한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 다만 유선 TV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현상(cord-cutting)이 대세고, 웨이브 측에서도 SK브로드밴드라는 IPTV 브랜드가 있는 만큼 반대의 명분은 약하다.

  • 그보다는 티빙의 주주인 KT와 CJ ENM 간의 갈등이 합병의 장애물이라는 시선도 있다.

    지난 2022년 티빙은 KT의 OTT인 시즌(seezn)을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KT는 자체적인 콘텐츠 소화 채널이 있었지만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CJ와 제휴를 택했다. 그런데 이후 티빙이 통신 라이벌인 SK그룹의 웨이브와 합병을 논의한다고 하니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합병 시 투자 가치도 희석된다. 적어도 현 경영진이 합병에 전향적으로 협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KT는 시즌을 티빙에 넘기면서 일정 수준의 고객을 유치하되, 그에 미치지 않을 경우 부족분을 CJ 측에 현금으로 벌충해주기로 했다. 모객 규모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KT가 CJ에 보상해줘야 할 돈은 1000억원 이상으로 거론된다.

    티빙과 웨이브 합병 논의에선 이런 모객 및 보상 조건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KT 입장에선 티빙이 경쟁사와 손을 잡겠다고 한 것도 불편한데, 경쟁사에는 고객 모집 조건도 빠져 있다 보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티빙 측에서 합병을 위해 KT의 고객 모집 부담을 먼저 덜어주기도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반면 KT로선 티빙-웨이브 합병을 가로막는다는 시선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미 임원겸임 방식으로 결합의 실질은 만들어진 상황이다. 아울러 KT 측의 티빙 지분율은 13.5%에 불과해 언제든 주주총회를 열어 표대결을 하면 합병을 결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KT 측은 "계약상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합병은) 시장 상황과 투자 가치를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