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페이 매각 무산 배경은?…가격 고집한 신세계, AI로 눈돌린 카카오
입력 25.07.18 14:07
취재노트
신세계와 카카오, 반년 넘게 이어진 가격협상
AI 산업 집중하는 카카오, M&A 우선순위 변경
신세계는 계열분리·자금 확보 계획 수정해야
  • 신세계그룹이 추진해온 간편결제 플랫폼 쓱페이(SSG페이)·스마일페이 통합 매각이 사실상 무산됐다. 유력 원매자였던 카카오페이와의 가격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신세계는 4000억원대의 밸류를 요구한 반면, 카카오는 이보다 낮은 수준에서 타협 의사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 카카오 양측은 18일 "협상을 종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신세계는 "매각은 잠정 중단한 상태이나 다양한 방안을 계속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도 "전략적 검토는 있었지만, 현재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없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실제로는 한쪽이 먼저 협상 결렬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신세계는 통합 간편결제 플랫폼 매각을 통해 커머스 사업 재편과 자금 유동성 확보를 노렸다. 쓱페이와 스마일페이 합산 사용자는 약 1300만명, 연간 거래액은 3조~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스마일페이는 과거 이베이코리아 시절부터 이어진 지마켓(G마켓) 결제 인프라, 쓱페이는 이마트·스타벅스·SSG닷컴 등 오프라인 리테일 채널이 핵심 자산이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사에 들어가 신세계 경영진과도 미팅을 진행하며 적극적인 검토에 나섰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오프라인 결제망 보완으로 네이버페이를 앞서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중복 가입자 비중, 데이터 연계 관련 법적 리스크, 브랜드 이원화 문제 등 복잡한 과제가 산적했고, 무엇보다 가격 격차가 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장에선 카카오가 70~80% 수준까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절반 가까운 금액을 희망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카카오는 AI와 글로벌 확장 등 전략적 투자 우선순위 변화에 따라 인수 의지를 접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는 수천억원이 필요한 AI 투자에 예산을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M&A에 대해선 우선순위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 출범 이후 AI 산업 육성에 정책적 무게가 실린 가운데,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전 의장은 전 정부 관련 '집사 게이트' 특검 수사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는 오픈AI와 협업해 한국형 AI 에이전트(카나나)를 개발하는 등 친정부 AI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현 정부의 대규모 AI 정책과 예산 지원을 바탕으로 전략적 투자 방향을 조정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쓱페이 인수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래 불발 후에는 책임 공방이 불가피한 국면이다. 협상 과정에서 양사 내부 갈등도 만만치 않았던 상황이라 재협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 인수금융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가 물적분할을 통해 쓱페이와 스마일페이를 합병한 뒤 매각하려 했지만 가격 눈높이 차이를 줄이지 못했다"며 "매수자 입장에서는 두 플랫폼을 함께 가져간다고 해도 매력이 분산돼 판단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진 회장이 직접 챙긴 쓱페이 매각은 단순한 M&A를 넘어 계열분리 작업과도 맞물려 있다는 게 시장의 시선이다. 현재 SSG닷컴은 이마트가 45.6%, 신세계가 2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공정위의 계열분리 요건 충족을 위해선 지분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에선 이마트가 신세계 보유 지분을 인수해 SSG닷컴을 단독 계열로 편입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쓱페이 매각이 검토됐다는 분석이다. 쓱페이는 최근 SSG닷컴이 물적분할을 통해 설립한 자회사로, 매각 시 유입되는 자금은 SSG닷컴이 확보하게 된다. 해당 자금은 배당, 자본재조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기에 향후 지분구조 조정 과정에서 재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매각 무산으로 관련 논의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앞으로도 신세계는 다른 전략적투자자(SI)나 사모펀드(PEF)와의 거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열어둘 전망이다. 다만 플랫폼 정비나 개인정보 처리 적법성 검토 등 해결해야 할 복잡한 과제가 산적해 당분간 추가 진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쓱페이 매각 무산은 양측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모양새다. 신세계는 자금 확보와 계열분리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지 못했고, 카카오는 정부 눈치를 보며 AI 투자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했다. 어쩌면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깊어진 불신과 갈등은 향후 협상 재개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