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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첫 내각이 꾸려지면서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퍼즐들이 하나 둘 맞춰지고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대기업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논의된 구조조정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줄 관련 법·제도 정비가 예고된다.
공급과잉 상태인 납사분해설비(NCC)를 중심으로 인수합병(M&A) 논의에도 순차로 살이 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실기하지 않고 연착륙을 달성하기엔 대기업 중에서 총대를 멜 곳이 불투명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내달부터 정부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김정관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석유화학 산업에서 실기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밝히며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기활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경제 시스템의 전면적 대혁신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회도 새 정부 의지에 화답하고 있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한국산업은행의 수권자본금을 기존 30조원에서 45조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산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책금융이 정부 구조조정 논의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증자할 수 있는 산업은행의 자본금 한도를 대폭 늘인 것이다. 개정될 기활법에 발맞춰 국책은행을 통한 재정 투입 경로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석유화학 구조조정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 2년여 동안 대기업들이 민간 차원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맞춰온 만큼 회사법, 공정거래법, 세법상 규제를 유예·완화하고 필요 재원 조달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될 것이란 기대감이 전해진다.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어차피 납사분해설비(NCC) 등 기초·범용 사업을 가진 대기업 계열 석유화학 기업들끼리 인수합병(M&A) 방식으로 사업재편에 나서야 구조조정이 시작될 수 있다"라며 "자발적 사업재편, 경쟁력 강화를 유도한다는 기활법 취지에 부합하게끔 승인 문턱을 낮추고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마중물을 대기 시작한 만큼 검토에 머물러 있던 기업들의 고민도 현실적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기초·범용 사업을 줄여 공급과잉을 해소하자면 통폐합 주체가 필요한데, 총대 메기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적지 않다. 이후 공백을 메우기 위한 특화 신사업도 기업마다 투자 여력이나 준비된 정도가 제각각이다.
합작법인(JV) 형태의 공동지배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향후 경쟁력 제고까지 기대하긴 힘든 방식이란 지적이 많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대산 석유화학 산업단지 내 NCC 통폐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은행에서도 관련 작업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실현 가능성을 두고 시각이 엇갈린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NCC 통폐합 후 JV로 공동지배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여수 산단의 여천NCC 모델인데, 향후 의사결정 구조에서 데드락(교착 상태) 문제가 핵심 걸림돌"이라며 "연초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여천NCC에 각각 1000억원씩 수혈에 나선 것도 기한이익상실(EOD)을 앞두고 겨우 결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NCC 공동지배가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두 화학사가 NCC를 통합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정유사와 화학사의 결합 난이도는 그보다 더 높다는 지적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 10여년 설비 고도화 과정에서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해 범용 공급과잉을 심화시킨 주체로도 거론된다. 자체 발생하는 납사를 해소하는 선 이상으로 화학 사업에 개입할 유인이 부족해 통합 이후에도 이해관계 불일치가 지속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형 석유화학 대부분이 NCC를 줄이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보니 빅딜이 성사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한화나 DL그룹 모두 여천NCC 정리 고민이 한창이고 롯데케미칼도 대산 외 여수 산단 NCC까지 매각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파악된다. LG화학은 쿠웨이트 PIC와 해당 지역 NCC 유동화 논의가 무산된 뒤로도 매각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관측이 많다.
정부가 사업재편 승인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춰준다면 기업 차원에서 향후 어떻게 화답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오르내린다.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전환을 위한 추가 투자나 지역 고용대책 등이 필요할 텐데 말처럼 쉽지 않은 작업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2차전지나 전자재료 등 신사업으로의 전환 작업도 벽에 가로막힌 상황이고 기존 석유화학에서 연구개발(R&D) 투자로 스페셜티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며 "각사마다 그룹 내 화학 부문의 비중이나, 전후방 포트폴리오도 다 다른데 대체로 추가 투자 여력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거 해운업 구조조정 당시에도 산업은행을 비롯한 공공 부문의 개입을 높여 HMM 부활의 기틀을 마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도 지역 산단마다 통합 NCC를 출범하되 기존 화학사들은 각기 특화 제품이나 신사업 전환에 주력하도록 유도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새정부 내각 출범 후 기활법 개정·産銀 증자 등 본격화
마중물에도 기업 대부분 눈치 한창…쉽지 않은 JV 논의
시나리오 검토에서 현실적 고민 단계 접어들고 있지만
여력 마땅치 않으면 결국 산은 등 공공부문 역할 커질지도
마중물에도 기업 대부분 눈치 한창…쉽지 않은 JV 논의
시나리오 검토에서 현실적 고민 단계 접어들고 있지만
여력 마땅치 않으면 결국 산은 등 공공부문 역할 커질지도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7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