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의 2차전지 투자 손실은 얼마일까?
입력 25.07.23 07:00
LG엔솔 포함 2차전지 대형주 대부분 3년새 50~80% 하락
국민연금 등 기관 손실 걱정…주식 외 채권, 메자닌도 다량
대기업 의지·역량 확고하고 금융권 지원 기조 변함 없어도
현장선 "아직 바닥 논하기 어렵다" 조심스러운 분위기 지속
  • 2차전지 산업은 2020년대 들어 한국의 다음 10년을 챙겨줄 먹거리로 부상했다. '포스트 반도체'를 고민하던 재계는 줄지어 2차전지를 핵심 사업으로 챙겼고, 기관은 자금을 무더기로 투입하며 마중물을 댔다. 그러나 업황이 고꾸라진지 3년 넘게 정상화 신호가 요원하자 큰손들 사이에서도 슬슬 손실 걱정이 새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2021년 7월 28일 엘앤에프 지분을 3.94% 매입했다고 최초로 보유내역을 공시했다. 이후 11만원대이던 엘앤에프 주가는 2년 뒤 2023년 장중 34만9500원까지 치솟았다. 주가가 정점을 찍은 그해부터 엘앤에프는 단 한번도 이익을 남기지 못했다. 엘앤에프 주가는 이후 3년 동안 84% 하락해 16일 5만4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회사는 작년 연말부터 영구채, 교환사채(EB), 신주인수권부사채(BW)까지 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기관 분위기는 좋지 않다. 국민연금은 이달 초 엘앤에프 주식을 1.2%포인트가량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연초 늘렸던 물량을 도로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민연금을 위시한 기관투자자 손실 전반을 따져보자면 엘앤에프는 빙산의 일각으로 비유된다. 국내 2차전지 산업의 맏형 격인 대장주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 역시 같은 기간 50% 하락했고, 소재 사업에 뛰어든 모회사 LG화학 주가는 본업 부진이 겹치며 66% 하락했다. 이외 삼성SDI는 76%, 포스코퓨처엠은 62%, 에코프로비엠은 74% 하락하는 등 셀, 소재사 주가 대부분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한때 현대차 시가총액을 넘보던 기업들이었으니 매도 시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손실 구간일 거란 분석이 많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2023년 상반기 당시 국내 섹터가 중국 업체보다 멀티플(배수)이 올라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2차전지 주식이 됐다. 비중이 커서 안 담을 수가 없었다"라며 "이후로 비중 조절을 했어도 주가가 내리막만 탔기 때문에 국민연금도 손실 걱정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주식 외 채권이나 대체투자 자산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소재 우려까지 나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단순히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발생한 평가손실 외에 이후 발행된 채권, 메자닌 등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은 상황으로 풀이된다. 2022년 하반기 시중금리가 폭등한 뒤 2차전지 기업들은 대부분 EB나 전환사채(CB), 전환우선주(CPS) 등 사모 메자닌 발행으로 조달을 이어갔다. 하필 주가에 잔뜩 거품이 낀 때였는데도 대형사가 뛰어들자 우후죽순 따라 들어간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적지 않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 자금을 운용하는 곳들이다. 작년부터 대부분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PE업계 한 관계자는 "쿠폰금리(표면이자율) 0%에 만기이자율(YTM)도 2%에 불과한 조건에도 대형사를 따라갔다가 낭패 본 곳들이 적지 않다"라며 "2차전지 산업 펀더멘털이 당시보다 더 안 좋아졌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긴 어렵고 대부분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관에서 2차전지 업종에 2~3년 이상 자금이 묶이는 거래는 꺼릴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을 상대로 조달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 투자은행(IB)도 기관의 입장 변화나 그로 인한 곤란함이 전해진다. IB들 역시 그간 관계를 내세워 회사채 캡티브 영업을 강제하거나 영구채를 전액 떠안아달라는 등 요구로 골치를 앓아온 참이기도 하다. 당장 유동성 마련이 시급한 사정임을 감안해도 외부 기류 변화에 둔감한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증권사 한 커버리지 담당 임원은 "대기업 그룹사인 셀 3사 외에 중견 소재사까지도 '(과거에)우리 주가가 얼마였는데' 같은 얘기를 꺼내서 곤란하다"라며 "2차전지 메자닌이나 주식에 물려 있는 기관들은 손실 걱정이 한창이고, 회사채도 3년물 이상은 안 보겠다고까지 하는데 외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라고 전했다. 

  • 캐즘(일시 수요 정체) 3년차에 접어들며 이제 진정한 바닥을 지나고 있는 만큼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는 시각도 있다. 다행히 미국 정부의 첨단세액공제(AMPC) 보조금 정책은 큰 틀에서 유지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떨어진 가동률은 현지에서 늘어나는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프로젝트 수주로 채워지고, 셀, 소재사 모두 리튬인산철(LFP)이나 리튬망간리치(LMR) 등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갖추려 분주하다. 2분기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의 실적 개선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높다. 

    LG, 삼성, SK 등 국내 최대 그룹사들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금융권 협력 기조에도 변함이 없다는 평이다. 새 정부도 기존 수출 제조업의 구조조정에 집중해야 하는 때라 어렵게 키워낸 2차전지 등 첨단 신산업 지원책 병행을 예고하고 있다. 힘든 시기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지만 언젠가 반등 시점이 올 거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다행히 상위 대기업 그룹사들이 2차전지 사업을 보유하고 있어서 중장기적으로 조달 방안은 다 마련돼 있고 은행권 승인도 확보됐다"라며 "시장 개화기 LFP에 대한 판단 미스나 미국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등 아쉬운 면도 있지만 대기업들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 과거 구제금융 시절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채무관계로 얽혀 있는 금융기관과 달리 현장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읽힌다. 새로운 폼팩터나 소재 개발, 신규 수주로 확보할 수 있는 모멘텀에도 한계가 뚜렷하고, 업황의 열쇠는 결국 고객사나 각국 정부가 쥐고 있다. 전방 고객사의 전기차 개발·판매 역량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갈등이 지속돼야 힘든 시절을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셀 3사가 가동률을 겨우 끌어올리고 있지만 국책은행 지원을 받고 미국, 유럽 생산기지 확장에 나선 소재사들은 더 버티기 힘든 단계"라며 "전방 완성차 고객사들도 생산, 판매 계획을 계속해서 조정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2차전지 산업에 대해선 여전히 전망이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