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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이 다시 행동주의의 전장(戰場)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외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체된 주가 흐름과 낮은 실익 탓에 한동안 ‘매력 없는 시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 정부의 주가 부양책과 맞물려 상법 개정 등으로 소액주주 권한이 확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투자자들이 한국을 ‘기회의 시장’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호적인 환경을 발판 삼아, 행동주의 성향의 기관투자자들이 잇따라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태광산업이다. 태광산업 기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 계획에 강하게 반대하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금융감독원의 공시 보완 요구까지 더해지며 논란이 커졌다. 태광산업은 결국 EB 발행 절차를 잠정 중단했으며, 트러스톤은 보유 지분 중 절반가량(2.3%)을 OK캐피탈에 블록딜로 넘기고 공동의결권 행사에 합의하며 주주권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행동주의 성향의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주요 기업들을 상대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롯데렌탈 유상증자에 대해 VIP자산운용은 소액주주 권리 훼손을 이유로 철회를 촉구하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코웨이 지분 확보 후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얼라인의 캠페인 발표 직후 코웨이 주가는 단기적으로 4~5% 상승했고, 전반적으로 약 25% 올라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개인 투자자 중심의 소액주주 연대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였다면, 최근에는 전문 플랫폼을 기반으로 결집하면서 조직력과 결속력이 한층 강화됐다.
플랫폼 내에서는 주주들이 투표로 대표를 선출하고, 모금을 통해 법률 대응에도 나선다.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뜻을 같이하는 주주들이 플랫폼을 통해 연대하고 공동 행동에 나서며, 사회적 이슈화로 이어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소액주주 연대는 '액트(ACT)' 플랫폼을 통해 티웨이항공의 적대적 인수에 대응하며 금융감독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법적 조치에도 나섰다. 또 이마트와 롯데쇼핑을 상대로 집중투표제 도입, 자사주 소각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 캠페인을 전개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플랫폼을 통한 소액주주 결집이 조직화된 상황에서 상법 개정까지 이뤄지면서 행동주의는 당분간 추세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소송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이나 대통령실 등에 민원을 제기해 여론화에 나서고, 정치권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들도 소액주주와 소통하긴 하지만, 이해관계가 달라 결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며 "기관은 협업을 강조하는 반면, 소액주주는 보다 강경한 요구를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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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주가 상승이라는 단기 자극을 제외하면, 진정한 의미의 ‘행동주의’가 국내 시장에 뿌리내리기까지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기관투자자(LP)들은 비교적 행동주의 전략에 관대하지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LP들은 공적 자금의 특성상 이해관계에 휘말릴 경우 외부 잡음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도 과거 행동주의 전략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웠지만, 이후 전략을 철회하고 교직원공제회 등 대형 LP 자금을 유치하면서 기조를 바꿨다. 과거에는 개인 및 중소기업 자금을 받아 프로젝트 펀드를 운용해 왔던 흐름과는 다르다.
SM엔터테인먼트를 대상으로 행동주의 전략을 펼쳤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도 해외 자금 유치에 나선 상태다. KT&G를 상대로 행동주의 전략을 구사 중인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역시 싱가포르 등지의 해외 기관 투자자와 접촉하며 펀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투자자들도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기존에 한국에 투자해 온 펀드들은 국내 인력을 채용하고, 투자 대상도 확대 중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인 달튼인베스트먼트는 올해 초 한국 법인을 설립한 뒤 콜마홀딩스 지분을 5.69%까지 늘렸고, 임성윤 공동대표를 기타 비상무이사로 추천해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이후 주총 직후 콜마홀딩스 주가는 하루 만에 8% 급등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미리캐피털은 지난달 스틱인베스트먼트 지분을 11% 넘게 확보하며 2대 주주에 올라섰고, 일반 투자 목적 하에 배당 확대와 임원 보수 관련 주주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행동주의 성향의 블루오카캐피털은 DN오토모티브 지분을 매입하며, 디엔솔루션즈 상장과 승계 구도를 바탕으로 기업가치 재평가 가능성을 근거로 투자를 단행했다.
한 글로벌 펀드 관계자는 "국내에서 행동주의가 힘을 얻지 못했던 건 결국 '자금력'의 문제"라며 "1~3% 수준의 지분으로 과도한 경영 개입을 시도하면 기업은 방어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장기 파트너 관계로 나아가려면 그만큼의 투자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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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7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