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반전쟁'은 시작일 뿐…CJ·쿠팡, 배송기사 처우 놓고 신경전
입력 25.07.25 07:00
CJ대한통운, ‘주7일 배송’ 도입 뒤 잇단 사고
쿠팡은 ‘백업기사’ 등 내세워 처우 개선 홍보
CJ·쿠팡, 유통·물류·엔터까지 겹치며 충돌 양상
  • 이른바 '햇반 전쟁'은 지난해 종지부를 찍었지만, CJ그룹과 쿠팡 간의 냉기류가 여전하다. 이번에는 택배 물류를 담당하는 CJ대한통운과 쿠팡이 배송기사 노동 이슈를 두고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물류 사업을 비롯해 CJ그룹과 쿠팡의 여러 사업 부문이 겹치면서, 사실상 ‘햇반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사의 신경전은 이달 들어 시작된 폭염으로 인해 택배기사들의 처우와 관련된 노동 이슈가 부각되면서 본격화됐다.

    지난 10일 한국노총의 발표에 따르면, 이달 4일 CJ대한통운 인천남구 도화집배점 소속 택배기사는 분류작업 참여 후 본인 차량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사망했다. 7일과 8일에는 각각 CJ대한통운 강남 서울역삼중앙집배점과 포천 연천집배점 소속 택배기사가 일한 후 집에서 휴식 중 사망했다.

    한국노총은 사고 배경과 관련해 “CJ대한통운을 비롯한 일부 택배사들이 전국적으로 주 7일 배송을 확대하면서도, 아직 추가 인력을 단 한 명도 배치하지 않고 있으며, 택배기사들을 분류작업에서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인 10일, CJ대한통운과 택배노동조합은 민간 택배사 최초로 대리점연합회–택배노조 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어 14일,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에게 자율적으로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휴식권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출산휴가(최대 60일), 경조휴가(최대 5일) 외에도 언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3일의 특별휴무를 보장하며, 오는 8월 14~15일은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 모든 택배기사가 배송 없이 휴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CJ대한통운은 주 5일 근무제 단계적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CJ대한통운은 올해부터 2주 7일 택배 배송과 배송기사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CJ대한통운에서 택배기사 노동 이슈가 떠오른 가운데, 이달 11일 쿠팡은 영업점 소속 배송기사들이 여름휴가를 갈 수 있도록 대체 인력 투입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업계 최초로 ‘백업 기사’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은 주 7일 배송을 받으면서도 배송기사는 주 5일 이하 근무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앞서 한국노총은 CJ대한통운 관련 보도자료에서 “쿠팡과 컬리는 이미 주 7일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면서도, 충분한 인력 충원과 백업 시스템을 통해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호하고 근무일을 주 5~6일로 제한하고 있다”며 “특히 CLS의 경우 대리점 계약 시 백업 기사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택배노동자 휴가 시 직영 인력을 대체근무로 투입해 휴식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물류 시장에서 사실상 CJ대한통운과 쿠팡이 양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이번 택배기사 노동 이슈를 두고 양측 간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며 "노조 등의 보도자료에 대해서도 양사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향후에도 CJ그룹과 쿠팡 간의 ‘대치전’이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내수 중심 사업을 영위하는 두 회사는 다수 사업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약 2년간 납품 단가를 둘러싸고 ‘햇반 전쟁’이라 불리는 갈등을 이어온 바 있다. 현재는 CJ대한통운과 CLS가 물류 부문에서 경쟁하고 있는 모양새다.

    뷰티 제품 판매 채널로는 CJ올리브영과 쿠팡도 경쟁 상대다. 올리브영이 H&B(헬스앤뷰티) 판매채널 중 국내 1위인 가운데,  쿠팡도 뷰티 버티컬 서비스 R.럭스(LUX)를 선보인데 이어 PB(자체브랜드) 스킨케어 라인을 새로 선보이는 등 뷰티부문 강화에 힘쓰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도 쿠팡의 투자가 활발해 CJ ENM에 위협이 되고 있다. 쿠팡은 쿠팡플레이를 여전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CJ ENM의 OTT 플랫폼 ‘티빙’과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콘텐츠를 핵심 사업으로 하는 CJ ENM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쿠팡은 HBO·Max의 오리지널 콘텐츠 등 해외 작품 수입이나,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스포츠 중계는 고객 충성도와 플랫폼 이용률을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돼, 양사는 주요 리그 중계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2023년 K리그 디지털 독점 중계를 시작으로 프리미어리그(EPL) 중계권까지 확보하며 유럽 4대 리그(EPL·라리가·분데스리가·리그1)를 모두 확보했다. 2025~2026시즌 미국프로농구(NBA)와 포뮬러원(F1) 중계도 예정돼 있다.

    티빙은 KBO 리그 2024~2026년 유무선 독점 중계권을 기반으로 프로야구 팬층을 공략하고 있다. 이 계약은 3년간 총 1350원 규모로, 직전 계약(5년간 1100억원·네이버·카카오·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컨소시엄)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해당 계약이 내년에 종료되는 점을 감안하면, 쿠팡이 스포츠 중계에 더 큰 투자를 단행하며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CJ그룹과 쿠팡은 여러 사업 분야가 겹치고, 내수 시장의 확장성은 제한적인 만큼 지속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