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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금융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비트코인 투자펀드 출시를 검토했으나, 당국의 부정적 반응에 계획을 철회한 정황이 확인됐다. 일부 운용사가 가시화되는 '가상자산 투자시장' 선점을 노리고 독자적으로 움직였지만, 금융당국의 견제와 업계 내부의 경쟁 심리에 부딪히며 결국 철회 수순을 밟은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금융당국과 운용업계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점유율 기준 '빅3'인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은 최근 비트코인을 직접 편입하는 자산배분형 펀드 구상을 추진했다. 이는 ETF가 아닌 비상장 공모펀드 형태로, 현행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으로 인정되지 않는 '가상자산'을 편입하기 위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검토한 것이다.
해당 펀드는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 요건의 예외를 전제로 한 구조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될 경우 한시적으로 가상자산을 편입할 수 있는 특례가 부여되지만, 정식 신청에 앞서 금융당국과의 교류 과정에서 부정적인 입장이 전달되면서, 계획은 자진 철회된 것으로 전해진다.
운용업계에선 이번 시도가 향후 가상자산 ETF 도입의 '선례'로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제도 정비 전 우회로를 확보하려 한 시도로 해석하고 있다. ETF는 자산 편입 요건이 더 엄격하고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비상장 펀드를 통해 당국의 허용 가능 범위를 사전에 시험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공통적으로 "정식 신청은 하지 않았으며, 내부 검토 차원에서 논의만 진행했다"고 밝혔다. KB자산운용도 신청 직전 단계에서 당국의 유사한 피드백을 듣고 계획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 펀드와 관련한 샌드박스 신청은 공식적으로 접수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번 시도가 무산된 배경으로는 여당을 중심으로 디지털자산혁신법 등 관련 입법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특정 운용사가 단독으로 '가상자산 투자상품 1호'를 선점하려 한 점이 꼽힌다. 특히 비트코인을 우회적으로 펀드에 편입하려는 시도가 정책 추진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당국 한 관계자는 "법적 근거와 인프라 정비 없이 가상자산을 펀드 기초자산으로 편입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 방침이 나온 상황에서 민간이 선제적으로 나서는 건 형평성과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금융서비스는 제도 공백이 불가피할 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제도인데, 이미 입법이 예고된 사안을 신청하는 건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와 금융당국은 올 하반기 내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 등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법·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법적 근거 마련과 함께 가상자산 ETF에 필요한 수탁·유동성공급자(LP) 인프라 구축과 투자자 보호장치 도입 등 기타 환경만 조성되면 국내 금융시장서 비트코인 투자는 초읽기라는 평가다.
일각에선 이번 사안을 두고 운용업계 내 가상자산 상품 선점을 둘러싼 경쟁이 과열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요 대형 운용사들이 유사 시기에 동일한 콘셉트의 펀드를 구상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투자 수요 대응이 아닌 업계 내부의 '눈치 싸움'과 '견제 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가상자산 ETF 경쟁이 제도화되기 전부터 이미 수면 아래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선 가상자산 관련 상품 도입이 이미 기정사실화된 수순이라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가상자산 활성화 정책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ETF와 펀드 등 가상자산 기반 금융상품이 일괄적으로 출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는 빠르면 내년 2분기 중 상용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대형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운용사들도 관련 상품을 내부적으로 스터디하고 있으며, 제도화 이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상품 구조와 투자 가이드를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가상자산 활성화 정책 방향은 이미 명확하며, 지금은 사실상 제도 시행을 앞둔 준비 기간"이라며 "이번 사례처럼 샌드박스를 통한 선제 시도는 오히려 '튀는 행동'으로 간주돼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대부분 운용사는 제도 정비가 마무리될 때까지 관망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미래에셋·KB 등 샌드박스 활용해 비트코인 투자펀드 출시 타진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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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7월 24일 14:4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