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日처럼 반도체 스페셜티 눈독…脫화학 공백 메울 대안
입력 25.07.30 07:00
90년대 日처럼 기초소재 벗어나 반도체向 스페셜티에 집중
기대 못 미친 2차전지 성장성…더 나은 전방은 결국 반도체
30% 이상 마진 보장되는 영역이나 만만치 않은 日 진입장벽
  • LG화학이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스페셜티(특화) 시장 진출에 힘을 싣고 있다. 2년여 전부터 주력인 석유화학 시장에서 출구전략을 마련해온 만큼 공백을 메울 전방 산업으로 반도체를 주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반도체 스페셜티 신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밸류체인 내에서 화학사가 진출 가능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시장을 살펴보고 제품군 확장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주재로 여러 산업 전문가들이 자문을 제공하며 준비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최대 화학사인만큼 범용 사업을 줄인 뒤 대안을 반도체 산업에서 찾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LG화학은 원래도 화학 다운스트림 외에 전자재료·바이오·비료·2차전지 소재까지 스페셜티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지만 매출 대부분은 여전히 석유화학 사업부에서 발생하고 있다. 당초 대안이었던 2차전지 소재 사업이 전방 전기차 시장의 부침을 겪자 성장성과 수익성이 보장된 반도체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석유화학 기반기술을 활용해 진출 가능한 반도체 밸류체인은 무궁무진하다는 평이다. 실리콘 웨이퍼를 평탄화하고 회로를 새기고 패키징하는 과정 전반에서 특수소재나 화학적 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완성차 고객사 성과에 기대야 하는 2차전지 산업과 달리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컴퓨팅 수요가 폭증하는 반도체 산업이 장기 전망에서도 유리한 선택지라는 시각이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서 양극재나 분리막 등 전지소재가 기초, 범용 부문 빈자리를 채우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결국 반도체만큼 확실한 전방 시장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쪽은 일단 밸류체인에 안착하기만 하면 30~50%까지도 마진이 보장되는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 일본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과 유사한 모델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은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급과잉인 범용 사업을 통폐합하고 반도체나 전자재료와 같은 고성장 산업 스페셜티 제품군 확보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현재 신에츠화학이나 도쿄오카공업, JSR, 스미토모화학 등을 위시한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반도체 소재시장 점유율은 약 60%에 달한다. 

    LG화학도 2000년대 이후 편광필름과 같은 스페셜티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전적이 있다. LG전자 등 그룹 전자 계열사가 글로벌 디스플레이·가전 시장 선두로 올라설 때 LG화학이 기존 일본 공급사들을 추월하고 수년 만에 메이저 공급사로 올라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업체 추격으로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이 부침을 겪자 편광필름 사업도 2년 전 1조1000억원에 현지 업체에 매각됐다. 

    반도체 시장이 유망한 만큼 뚫기 어려운 전장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포토레지스트나 웨이퍼, 감광제나 고순도 케미컬처럼 수요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에선 이미 일본 업체가 시장을 선점해 수십년 동안 진입장벽을 구축해왔다. 수율과 공정 신뢰성이 중요한 산업인 만큼 개별 공정에 특화한 공급선을 대체하려면 검증에만 수년이 필요하다. 비교적 진입이 쉬운 영역은 규모가 작거나 경쟁이 심해 마진이 박할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 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박막형 접착소재(DAF)나 전력반도체(SiC)용 실버페이스트 등 LG화학이 이미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를 앞둔 반도체향 제품군이 있긴 한데 시장 규모가 얼마나 클지는 아직 미지수"라며 "핵심 시장에 진입하려면 비주력 사업 매각으로 확보한 재원을 선두 업체와의 합작법인(JV) 설립에 투입하는 방법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