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연기금 감사 후폭풍…해외 ‘프로젝트’ 투자 꺼리고 ‘블라인드’로 쏠린다
입력 25.07.31 07:00
연기금·공제회 감사…투자 전략에도 영향
“책임 줄이고 수익률 챙기자”
해외 대체투자, 블라인드 펀드로 대이동
너도나도 해외 PDF에 출자
  • 해외 대체투자 지형이 바뀌고 있다. 최근 감사원이 주요 연기금·공제회의 해외 투자 실태를 감사한 이후, 개별 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보다 블라인드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가 대세로 자리잡는 양상이다. 특히 대체투자 중에서도 사모대출펀드(Private Debt Fund, PDF)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지난 5월 감사원은 주요 연기금 및 공제회에 대한 ‘대체투자 운용 및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연금공단과 한국투자공사, 대한지방행정공제회, 과학기술인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5개 기관은 2023년 말 기준 보유한 해외 부동산 투자 금액은 총 62조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이 투자자산에 대한 가치평가 및 투자 과정의 적정성을 중점적으로 점검했다.

    특히 개별 자산을 대상으로 한 직접 투자 건들이 주요 감사 대상으로 지목됐다. 예컨대 한국교직원공제회는 2018년 미국 시카고의 오피스에 투자한 펀드에 3500만달러를 출자했는데, 이후 임대율 하락으로 전액 손실 우려가 불거졌다. 감사원은 이 투자에 대해 검토 절차 미흡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 같은 사례가 드러나면서 연기금·공제회 내부에서는 투자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고, 책임 소재가 명확한 개별 투자를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감사 기간이 1년 이상 길어지면서 피로감이 누적됐고,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투자한 기관들은 ‘감사 소나기’를 피해갔다는 반응도 있었다.

    감사 이후 투자 방식의 변화는 가시적이다. 그간 국내 증권사들이 소싱한 부동산·인프라 딜에 대거 참여하던 연기금·공제회들은 이제 해당 방식을 ‘지양’하고 있다. 대신 여러 자산에 분산 투자 가능한 블라인드 펀드를 선호하고 있으며, 특히 PDF에 출자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한동안 개별 딜에 우후죽순으로 들어간 게 문제였다”며 “감사원 감사 이후 내부적으로 투자 전략을 재정비했고, PDF 중심의 블라인드 출자가 우선순위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PDF는 펀드 운용사가 사전에 설정한 기준에 따라 복수의 자산에 대출하는 구조로, 개별 건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대출 기반 상품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연평균 10% 수준의 수익률 기대치도 있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동시에, 개별 딜에 비해 실패 책임소지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점도 투자자 입장에서 부담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엔 비단 대형 연기금, 공제회 뿐 아니라 산림조합 등도 해외 PDF 출자 등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 PDF 시장이 커지고 있는 데다 투자 책임 이슈도 덜해지고 있어, 사실상 해외 대체투자의 주력 상품이 됐다”며 “해외 투자를 고려할 때 최우선 검토 대상이 PDF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쏠림 현상에 대한 경계도 제기된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해외 PDF 투자 이력이 길지 않고, 만기가 10년에 이르는 만큼 리스크 요인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해외 부동산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PDF도 결국 기업 대출 상품인 만큼, 경기 상황이나 차입자의 부실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환헤지 비용 등을 고려하면 실질 수익률이 8%대로 떨어질 수 있어, 마냥 안전한 자산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