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 버블 투자가 원죄?...'투자 레코드' 없는 심사역 찾는 VC들
입력 25.08.01 07:00
벤처투자 활성화 기조에 심사역 다시 채용하는 VC
2020~2022년 '벤처 붐' 시기 투자 손실 많아
IPO 등 '비 VC 출신' 선호하기도…몸값은 천정부지
  • 새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 기조에 발맞춰 다시금 '벤처 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투자 실적(트랙레코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버블 시기 고밸류 투자로 인한 손실과 회수 지연이 이어지면서다.

    25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VC들은 다시 신규 펀딩과 인력 충원에 나서고 있다. 벤처투자 확대 정책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심사역들의 몸값이 오르며 구인난과 동시에 '트랙레코드에 흠 없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불만도 함께 터져나오고 있다. 버블 시기 고밸류에 투자한 이력이 펀딩 과정에서 되레 장애물이 되고 있어서다.

    한 대형 VC 관계자는 "펀드레이징을 위한 LP 미팅에서 심사역 개개인들의 트랙레코드가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는데, 벤처 붐 시기에 활발히 투자했던 인력 중 일부는 트랙레코드가 많이 훼손돼 있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핵심은 심사역의 트랙레코드가 펀딩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투자자(LP)들이 소위 '문제가 있는' 심사역이 속한 운용사엔 출자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심사역 개인의 성과를 넘어, 운용사 전체의 펀딩 역량까지 흔든다는 우려도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비상장 벤처 투자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활발히 활동한 심사역들이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심사역들 사이에선 당시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펀드 소진 압박이 워낙 컸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이 다소 높더라도 투자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020~2022년 벤처붐 시기, 유례없는 유동성 속에서 VC들은 빠르게 자금을 집행해야 했다. 수많은 신규 운용사가 설립됐고, 고평가된 유망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가 몰렸다. 당시에는 오히려 '돈을 안 쓰는 심사역'이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시기의 투자 기록이 부담 요인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토스, 무신사, 마이리얼트립 등 플랫폼 기업들이다. 기업의 기본 체력은 충분하지만, 기대감이 과도하게 반영된 밸류로 투자한 탓에 수익 실현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토스의 경우 시리즈 G 투자 당시 약 9조 원의 밸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주가(5만원대)를 기준으로는 투자 원금 회수도 쉽지 않다.

    마이리얼트립과 무신사 역시 최근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뿌리거나 준비 중이지만, 이전 투자 라운드에서 형성된 밸류를 맞추기 위한 상장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플랫폼 기업 외에도 벤처붐 시기에 투자됐다가 현재는 전액 상각 처리된 사례도 종종 거론된다.

    이런 우려는 채용 전략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VC 업계에서는 아예 투자 경험이 없는 '비(非) VC 출신'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IPO나 사모펀드 등 벤처투자 실적은 없지만 문제 될 기록도 없는 인재가 '오히려 낫다'는 설명이다. 

    다만 연봉협상이 쉽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최근에 심사역 1명을 뽑는 공고에 100명이 지원했다"며 "증권사 IPO 부서 출신을 가장 선호했으나, 연봉협상이 잘 안 된 걸로 안다"고 밝혔다.

    한 증권사 IPO부서 팀장급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중복상장 금지로 인해 평균 공모 규모가 줄어들며 IPO로 돈을 벌 기회는 줄어드는데, VC쪽에서는 투자 레코드가 없으면서도 업권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인력에 대한 수요가 있다보니 IPO 부서 인력 유출이 심해졌다"며 "심사역 구인난으로 VC가 제시하는 연봉 수준이 올라가며 팀원 매니지먼트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